아이들에게 ‘고3’을 생각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었더니 “몰라요.” 또는 “막막해요.”라는 답이 제일 많았습니다. 엄마들에게 ‘고3 엄마’를 생각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었더니 대답 대신 한숨만 가득했습니다. 고3 엄마는 그런 건가 봅니다. 말보다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를 게 뭐 있을까요. 다만 불안하고 어렵다는 소문 무성한 고3 시기를, 그 엄마의 시기를 무사히 지났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아주 큽니다. 게다가 저는 걱정이 많은 유형입니다. 대범한 엄마들은 ‘그까짓 꺼 실력대로 해! '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멋있는 말로 퉁칠 만큼의 깜냥이 안 됩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정말 딴판이었습니다. 제일 큰 변화는 엄마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한 느낌이었습니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멀쩡하게 지내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과연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의 어리숙한 아이를 볼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애매모호함과 당황스러움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은 막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었고, 앞으로 있을 지난한 시간들에 그런 일이 더 있으면 있었지 없으란 법은 없기에 나만의 비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일종의 워라벨처럼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힘쓰는 것처럼 저는 '엄마'와 '이경혜'를 잘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찾은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처음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몸이 튼튼해야 마음이 튼튼해진다는 생각으로 운동도 해 보았고, 드로잉도 시도했었고, 우쿨렐레도, 가드닝도, 영어 공부도 했습니다. 이것들 중 현재까지 하고 있는 것도 있고, 영 재미를 찾을 수 없어 그만둔 것도 있습니다. 나를 붙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중 특히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 건 내가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독립된 인격체와 어리숙한 모습을 오갈 때마다 저도 엄마와 이경혜 사이를 첨벙첨벙 건너 다니며 어지러웠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그때는 어땠어?'라는 질문을 하며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답을 받아 적으니 내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한 편이 나왔습니다. 그 이야기 중 부모님의 자리에 나를 넣고, 내 자리에 아이들을 넣으니 어지러웠던 마음이 가지런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지러웠던 내 마음이 머리에서 손가락을 통해 글자로 나왔습니다. 나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된 글이 나의 눈을 통해 뇌로 다시 들어오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나와 분리된 것 같은. 그래서 나를 요리조리 매만져서 다시 내 안으로 쏙 집어넣는 것 같았습니다. 아팠던 마음은 살살 달래고, 알 수 없었던 마음에는 힌트를 붙이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은 후후 입바람을 불어 식힐 수 있는 것이 제게는 글쓰기였습니다. 글쓰기 말고 다른 것도 좋았지만 내가 나와 제일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 글쓰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