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필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꾸욱 꾸욱 눌러 쓴 첫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때 썼던 독서록입니다. ‘헬렌 켈러’라는 책을 읽고 거의 베끼다시피 한 독후감이었습니다. 유독 엄했던 그 선생님은 원고지에 써 오라고 주문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원고지도 처음이었고, 독후감은 더더욱 처음이었죠. 제대로 된 책 한 권 없는 시골, 막내 고모가 쓰던 앉은뱅이 책상에서 저녁 내내 원고지와 씨름을 한 결과 두툼한 독후감을 써냈습니다.
글이 아니라 글자를 썼던 그날의 독후감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헬렌 켈러를 지도했던 설리번 선생님 때문입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헬렌에게 글을 가르치고 말하는 법을 알려준 그녀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존경’이라는 단어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리번 선생님에 대한 강력한 인상은 글이 아니라 글자를 쓰면서도 남았습니다.
그때 만약 제가 글자에서 더 나아가 글을 썼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글쎄요... 도루코 칼로 연필을 깎던 꼬마가 과연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미래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산다 해도 글을 쓰는 건 여전할 테니까요. 내 인생은 이렇네 저렇네 라면서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 같으니까요.
누군가는 요가 수련을 하면서, 등산을 하면서, 바느질을 하면서 자아를 찾는다고 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나를 찾습니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을까요? 다른 방법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글로 나를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맞먹을 만큼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쓰는 이유는 그나마 언뜻언뜻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골목길에서 잡힐랑 말랑 하는 뒷모습처럼요. 내 인생 안에서 잘 살고 있는 나를 찾는 즐거움은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수려한 글 솜씨를 가진 작가님이 매우 부럽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부러우면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합니다. 씁니다. 글쓰기 노하우를 물으면 한결 같이 막 쓰라고 하더라고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못해도 죽밥은 된다면서 우선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쓰면서 는다고 하던데 느는 건 잘 모르겠지만 막 쓰는 건 하고 있습니다. 막 쓰다 보면 시나브로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도 생깁니다. 부러움과 희망이 시너지를 발휘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를 만나기 위해 쭉 쓰고 있습니다. 우선 글자라도 붙잡고 있어야 글이 나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리 쓰고 저리 쓰다가 우연히 만나는 거 있잖아요~ 골목에서 길이 엇갈리면 안 되니까 오늘도 쓰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글벗을 사귑니다.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내숭을 떨다가도 이 사람들이다 싶으면 막 들이댑니다. 수요일 독서모임이 그렇고, ‘나에게 선물한 겨울’ 글벗님들이 그렇고, ‘브함쓰 1기’ 동지들이 그렇습니다.
또 쓰고, 막 쓰고, 쭉 쓰다 보면 정말 좋은 글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