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일기 vs 아침 일기

by 미칼라책방



제가 초등학교 시절, 일기는 정말 정말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특히 방학숙제 중 일기는 제일 넘기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날씨도 날씨지만 한 달 전에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한단 말인가요... 산으로 들로 뛰어다닐 때의 마음과는 딴판으로 개학 전날은 곤혹이었습니다. 6년 동안 12번의 방학을 거치며 일기는 평생 아니 쓸 것이라고 다짐했건만 이렇게 일기 쓰기를 추천하자니 겸연쩍은 웃음이 절로 납니다.


삼 남매에게도 일기 쓰기는 늘 있는 숙제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일기를 아이들에게 시키려고 하니 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썼습니다. 똑같은 일기장 두 권을 하나는 엄마 꺼, 하나는 아이 꺼. 이렇게 쌍둥이 일기장을 마련하고 저녁에 마주 앉아 오늘 이랬던 저랬던 일에 대한 수다를 떨며 일기를 썼습니다.


가끔 험담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기장에 쓸 수는 없다면서 키득키득 웃고 넘겼던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칭찬을 할 때는 아주 후하게 써 주었습니다. 매일같이 ‘나는 오늘...’ 이라는 글자로 똑같이 시작하는 일기를 다르게 쓰자고 다짐하면서 아예 ‘나는 오늘’을 빼고 써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것도 거듭되니 나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글자 안 쓰고 그림만 그리면 안 되냐고 물을 때면 당연히 된다고 하면서 저도 그림만 그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쓰는 일기는 하루 일을 반성하면서 내일에 대한 계획도 했습니다. 반성할 것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뭐라고 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늘 반성할 것이 있었습니다. 뭐를 만날 그렇게 잘못하는지... 열심히 잘 산다고 살았는데도 매일 반성할 일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내 숙제로, 초등 학부모 때는 아이들 숙제로 일기를 썼습니다. 그 후로는 다이어리에 일정을 쓰는 것이 다였는데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새벽에’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마음잡고 앉아 있을 시간이 밤에는 불가능했기에 아침 시간을 택했습니다. 큰아이 학교 데려다주고 오는 데 소요되는 한 시간 동안 핸들을 잡고 있으면서 머리로는 오늘 하루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정리하면서 썼습니다.


아침에 쓰는 일기는 희망찹니다. 아무래도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 일기가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것이 주 내용이라면 아침 일기는 조금 다릅니다. 앞으로 펼쳐질 하루에 대한 기대와 걱정과 모호함이 살짝 텐션을 끌어올려 주기까지 합니다. 잘 될 것 같다는 두근거림도 있고, 잘 안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아침 시간이니까요. 별일 없는 하루는 그야말로 별일 없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한 줄로 무사함을 기원합니다.


별일이 없어도, 별일이 있어도 모든 하루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아침 일기를 추천합니다. 물론 저녁 일기도 쓰면 너무 좋지요. 단지 저는 저녁에 일기 쓸 30분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기에 아침에 썼을 뿐입니다. 하루에 대한 기원을 저녁에 하든 아침에 하든 그 의미 부여는 자체로 소중합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떠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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