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이루던 날은 5월 1일이었습니다. 두 손 모아 간절하게 바랐던 일이었으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나뿐만 아니라 복지관에서도 기념할 만한 날이었습니다. 단종복지관에서 종합복지관으로 승격한 날이기도 했으니까요.
단종복지관은 대상을 한정하여 복지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그에 비해 종합복지관은 지역사회와 연계를 지향하며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단종복지관과 종합복지관 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두 곳 모두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단종복지관은 특정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활동하며 대상자가 비교적 소수입니다. 그에 비해 종합복지관은 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며 규모가 비교적 큰 사업들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종종 있습니다.
재활복지관에서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승격하는 날도 5월 1일이었고, 이경혜가 사회복지사로서 현장에 투입된 날도 그날이었습니다. 저나 기관이나 모두에게 경사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복지관에 근무해 왔던 사람들은 종합복지관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단지 이름의 변화보다 진화와 영전의 의미가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복지관과 함께 일을 시작하는 마치 동료와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활기찬 시너지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사회재활팀에서 장애아동의 방과 후 사업을 맡았던 저는 학령기 아동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화수분처럼 쏟아냈습니다. 초반에는 지칠 줄도 몰랐고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깔깔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학년도 올라가고 장애는 단지 차이일 뿐이라고 여겨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가진 장애가 '단지 장애'일뿐 아니라 앞으로 아이들의 인생에서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진 '차이'는 결국 '차별'이라는 낙인으로 돌아올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처음에는 조그만 티끌이었고, 거듭 생각하다 보니 불안이 되었고 이건 눈덩이처럼 불어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을 나누기 위해 둘러보았으나 나와 같은 화수분들이 모여있던 신생 종합복지관에서는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장애인종합복지관에는 막 돋아난 어린잎처럼 싱싱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연차가 쌓여 기댈만한 노하우를 찾지 못했습니다. 사회재활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차이와 차별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 시야를 더 넓혔습니다.
OO시에 있는 유관기관 목록을 뒤졌습니다. 여러 종합사회복지관과 단종복지관들, 대안학교와 센터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시청 담당자도 당연히 포함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 전화로 먼저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는데 함께 나누어 보지 않겠냐 의사를 타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또 그 전전에 팀장님과 관장님에게 이렇게 전화를 넣을 건데 유관기관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시 순서를 정리해 보자면 내 고민 ~ 팀장님 ~ 관장님 ~ 유관기관 담당자들로 거미줄을 확장했습니다. 전문용어로 네트워킹이라고 하죠.
다양한 기관에서 더 다양한 분들이 복지관 회의실에서 모였습니다. "저는 이경혜라고 합니다." 소개를 한 뒤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고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무리한 진행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겨우 1년 차 사회복지사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누구도 제 경력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우리는 매월 간담회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OO시 초, 중, 고 학생들을 모아 여름캠프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장애와 비장애를 아우르는, 학년도 초월하는 캠프를 진행하기 위해 우리는 똘똘 뭉쳤습니다. 뭉치면서 조직에 이름이 없으면 되겠냐는 건의가 있었고 마침내 그 이름도 거창한 <통합으로 가는 길목> 이 탄생했습니다. 민-관이 협력한다는 문구는 많이 보았어도 민-민-관-관이 협력하는 사례는 우리가 처음이라면서 자부심이 넘쳐났습니다.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통합으로 가는 길목> 여름캠프는 안전사고 한 건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고 이후 기관 간 연계 프로그램들이 <통길>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통길의 조직원들은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상담교사, 치료사, 지도교사 등이었는데 해를 거듭하며 보직 이동이나 승진을 하였고 지금은 모두 처음과 다른 곳에 소속되어 기관장 또는 관리자로서 사회복지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처럼 한 발만 담그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선생님들을 손가락으로 한 분씩 꼽으며 기억해 보니 하나같이 대단한 분들이셨습니다. 저는 단지 "여기요~!"라고 손짓만 했을 뿐, 큰 역할은 그분들이 모두 감내하셨습니다. 새삼 감사한 마음이 솟아납니다.
통합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함께 손짓하고 있습니다. "여기~~!"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으세요?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사회복지사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