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Apr 22. 2023

스물일곱에 만난 그녀

그녀를 만난 것은 내가 스물일곱 일 때였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지만 다만 나이가 그랬을 뿐, 그녀는 나에게 늘 언니였고 멘토였습니다.


당신의 사진을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려고요~^^

남편도 내 사진 함부로 안 쓰는 거 알죠? 특별히 경혜 언니에게만. ㅋㅋ


나는 그녀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인증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호칭은 서로에게 너, 당신, 자기, 쌤, 언니 등 여러 가지입니다. 가끔 급할 때는 "야~!"라고도 합니다. 말도 높였다가 낮췄다가 대중없습니다. 그녀와 내가 특별한 사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사회복지사를 시작할 때 우리는 끈끈한 동료였으니까요.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복지관에 이력서를 접수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복도에서 사무실이 어디인지 찾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면 되겠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거 아시려나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부끄럼 많은 내향성 인간이 바로 나였으니까요.


저쪽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아... 보였다기보다 소리가 먼저 들렸습니다. 우당탕탕 콩콩콩콩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도 어떤 아이가 앞에서 도망가고 있었고, 뒤따르며 거기 서라는 것 같았습니다. 청소년 이용자들끼리 장난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앞으로 씽~ 한 번, 그리고 또 씽~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눈길로 그들의 뒤를 따르니 '접수처'가 보였습니다. 


그렇게 OO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 지원했고, 면접을 보았고, 합격했습니다. 첫 보직은 사회재활팀이었습니다. 나는 초등 아동을 맡았고, 그녀는 청소년반 담당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복지관에 처음 온 날 복도를 뛰어 횡단했던 두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인사는 "안녕하세요? 이경혜라고 합니다."라고만 했습니다. '그날 복도에서 막 뛰어다니는 거 봤어요.'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간단히 말해서 나랑 완전 반대였습니다. 심지어 식성도 달랐습니다. 나는 국물보다 건더기를 좋아해 밥을 다 먹고 나면 늘 국물이 찰랑거렸는데, 그녀의 식판은 설거지를 한 듯 깨끗했으니까요. 


경혜선생님은 국물 안 먹어요?

네.

어머. 그럼 빡빡해서 밥을 어떻게 먹어?

반찬이랑 먹어요.

아~ 그렇구나!


그녀는 수긍도 빨랐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았는데 장점만 생각났습니다. 단점을 굳이 하나라도 꼽으라면 목소리 큰 거? 그것뿐이었습니다. 설마... 단점이 있겠지요. 다만 우리 사이에 통하지 않았겠지요. 그런 사이라는 느낌이 통했을 무렵 그녀에게 복도에서 씽~ 뛰어 지나갔던 일을 물었습니다. 


그녀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깔깔 웃었습니다. 그녀는 덩치가 매우 작아 청소년 이용자들과 함께 있으면 사회복지사인지 이용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부로 현장학습이라도 나가면 지도교사인지 학생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한 마디에 덩치들이 줄을 서고 하나, 둘, 셋 번호를 붙이는 건 그녀만의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매력에 빠졌으니까요.


우리 둘은 기혼 여성 사회복지사가 겪을 수 있는 아픔들을 대부분 함께 했습니다. 결혼생활의 고단함, 출산의 실패와 어려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갖는 이중성, 힘겨운 육아와 다디단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 많은 것을 공유하는 그녀가 있었기에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사회복지사 이야기를 쓴다면 그녀에게 한 꼭지는 꼭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의 지분이 그녀에게는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녀와 나는 이제 한 직장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그녀도 나도 다른 곳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우리는 사회복지사라는 명분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니까요. 우리 같은 사회복지사가 이 사회 곳곳에서 반짝거리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나는 스물일곱에 그녀를 만나 시작했지만 그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스물일곱의 그녀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야간 당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