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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Mar 31. 2023

소매치기세요?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것은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그만큼 보람도 있기에 수년간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담당 업무에 따라 힘들게 느껴지는 지점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학령기 장애 아동의 사회적응과 일상생활 훈련을 담당했기에 그들의 사회생활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날은 아이들과 함께 현장실습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사는 실습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 달 전부터 준비합니다. 우선 우리의 하루 일과를 깨알같이 분석하여 각각의 활동을 분리합니다. 세세하게 명목화된 활동을 수행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주의할 점을 시각화합니다. 발견된 것들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사진을 찍어 기억을 돕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구매 목록을 적는 거지요. 사야 할 것을 적는 행위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참 간단한 일이지만 장애 아동들에게는 뭐가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모든 것이 반복 훈련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날은 '어떻게 사는지'를 실습하는 날이었습니다. 사야 할 것은 칫솔과 치약, 비누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우선 동네에 있는 대형마트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들과 단체로 방문하는 것이기에 공식적으로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김 : 네. **마트 김 아무개입니다.

이 : 저는 장애인복지관 이 아무개라고 합니다. 

김 : 아, 네. 안녕하세요?

이 : 네. 안녕하세요? 다음 주 수요일에 저희 아이들 데리고 물건을 사러 갈 건데요, 혹시 공문을 보내야 할까요?

김 : 몇 분이나 오시는 거죠?

이 : 저랑 자원봉사자까지 합해서 열다섯 명 정도 됩니다. 

김 : 그 정도면 그냥 오시죠, 뭐.

이 : 그럼 따로 공문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김 : 네. 편하게 다녀가십시오.

이 : 감사합니다.

김 : 네. 감사합니다.


일사천리였습니다. 실습 당일에 아이들은 마트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수십 번 이야기한 후 복지관을 나섰습니다. 마트에 도착해서 유리문 앞에서 인원파악을 마지막으로 한 후 '절대 뛰어다니지 않기'와 '선생님과 멀어지지 않기', '물건 잘 고르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거의 외우다시피 한 안내였습니다.


마트로 들어섰습니다. 아이들은 엄마랑 여기 와 봤다, 이거 우리 집에 있다, 하나 말고 두 개 샀으면 좋겠다 등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며 생필품 코너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칫솔과 치약, 비누를 골랐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양 끝에서 아이들이 다른 코너로 가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관공서 프로그램에서 사진 자료는 필수니까요.


한참 고르고, 지키고, 찍는 중에 누군가 제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그 : 누구세요?

나 : 아~ 네. 저희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왔어요.

그 : 그런데 사진을 왜 찍으시는 거죠?

나 : 아이들 프로그램 활동사진이에요.

그 : 카메라 주세요.

나 : 네? 왜요?

그 : 여기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나 : 저 허락 맡고 왔는데요?

그 : 누구한테요?

나 : 사무실에요.

그 : 흠...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섰던 그 사람이 어느새 내 뒤로 다가와 내 가방에 손을 집어 넣어 카메라를 빼내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뭐 하는 거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여기서 뭐를 찍었는지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소매치기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마트 조끼를 입은 걸 보니 직원인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잠깐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그날 함께했던 자원봉사자들은 워낙 능숙한 분들이라 그 즉시 아이들과 장보기를 마무리하고 계산대로 향했고, 저는 그 직원과 조금 격한 대화를 나누었고, 카메라는 지켜냈습니다. 복지관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하원시킨 후 자원봉사자들도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며 저를 걱정했습니다. 네. 저는 걱정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눌러 참고 있었거든요.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팀장님에게 그 마트에 항의 전화를 해도 되겠냐고 여쭤보았습니다. 대략의 설명을 들은 팀장님은 '이선생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셨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마트에 전화를 했습니다. 지난주에 전화 통화했던 그분께 마트 관리자를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부장' 직함을 가진 분이 전화를 돌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미리 방문을 알린 점, 공문 생략 과정, 카메라 사용 이유, 마트 조끼 착용자의 부적절한 언행과 함께 장애인복지관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홀대는 부당하다고 항의했습니다. **마트 부장님은 알아보고 조치하겠다고 하셨고, 저는 조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트 부장님은 처리되는 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화를 끊는데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 조끼 직원이 우리 아이들을 무시하고 저까지 깔본 것 같아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늘 이런 시선을 견뎌야 했을 텐데 그때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생각하니 더 슬펐습니다. 


다음날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어제 너무 울었나 싶어 혼자 머쓱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마트 부장님이 복지관으로 방문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를? 그냥 전화로 얘기해도 될 것을 왜 오신다는 걸까?'

궁금증과 걱정이 뒤섞여 올라왔습니다. 신참 사회복지사는 팀장님께 곧바로 보고를 했고, 사흘 전 **마트 사건으로 관장님과 팀장님과 저와 부장님이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결론은 **마트 부장님이 그 조끼 직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셨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최고관리자와 상의한 결과 복지관에 후원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복지관 연중행사에 음료를 협찬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하셨습니다. 마침 우리 복지관은 <oo시 장애인 합동 등반대회>를 매년 2000명 규모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장애인복지관과 **마트는 대화합을 이뤄냈습니다.


**마트 부장님이 돌아가신 후 관장님과 팀장님은 "이선생이 한 건 했어!"라고 하셨습니다. 이 건이 한 건 맞는 걸까요?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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