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을 받으면 무얼 할까 생각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자녀들이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는 장면을 보고 다른 건 몰라도 내복은 꼭 사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 25일이 다가올수록 챙겨야 할 분들의 목록과 사야 할 선물들은 차근차근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월급 날짜가 25일인 건 알겠는데 얼마를 받는지는 몰랐습니다.
워낙 돈에 어두운 탓도 있었지만 그때 복지관 분위기라는 것이 "저 얼마 받아요?"라고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이번에 아주 되바라진 직원이 들어왔더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20년 전 노동환경이었고, 저는 소심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때 마음으로는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라는 것에 취해서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25일이 되자 묻고 싶었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급여명세서에 50만 원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설마... 정말 50만 원일까 싶어 몇 번이고 눈을 비볐습니다. 크게 뜨고 다시 봐도 5와 0이 그렇게 프린트되어 있었습니다. 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이것보다는 훨씬 많이 받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달을 꼬박 일한 결과가 이거라고?'라고 생각하면서 26일이 되고, 27일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부모님 내복은 사야 했습니다. 그건 뭐랄까 인생의 숙제 같았거든요. 그래서 내복을 예쁘게 포장해서 저녁에 엄마와 아빠에게 하나씩 드렸습니다. 당연히 월급 얼마 받았냐고 물으셨고, 50만 원이라고 알렸습니다.
"그건 좀... 너무 적지 않아?"
아빠가 조심스레 건넨 말씀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근데 아빠, 나 너무 좋아. 복지관에서 애들하고 지내는 시간이 정말 재밌어."
라고 했습니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제 귀로 다시 들어오면서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요. 다음날 팀장님께 여쭤봤더니 수습 기간이 3개월이고 그동안은 50만 원을 받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종합복지관으로 승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게 고지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해해 달라고도요.
사실은 팀장님도 저랑 함께 면접을 보셨던 터라 우리는 모두 신입직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종합복지관으로 승격되면서 입사한 직원이 대부분이었고, 첫 달은 그렇게 얼렁뚱땅 숭구리당당으로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어림도 없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직도 돈에 어리숙한 제 모습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직업이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그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날개가 없어서 50만 원을 받았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열정페이'라는 낱말도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도 저는 날개가 있든 없든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장애인 또는 아동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고, 이력서도 그렇게만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복지관 사회재활팀에서 장애아동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장애인 또는 아동'이 아니라 '장애인 더하기 아동'이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저를 위한 사업 아닌가요? 그러니 열정페이라는 낱말보다도 더 먼저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사회복지사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