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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Mar 13. 2023

불합격보다 슬픈 합격

2월에 졸업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보건복지부장관 직인이 찍힌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내 인생에 장관이 주는 자격증이라뇨!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푸른색 벨벳 상장 케이스에 담아 대통령 표창장처럼 진열해 놓았습니다. 물론 그전에 복사는 여러 장 해 두었죠. 이력서에 첨부해야 하니까요.


이력서를 쓸 차례였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곳에서 종사합니다. 저는 아동과 장애인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사회복지사 구인 구직 사이트에서 종합복지관의 아동 담당자 혹은 장애인복지관을 알람 설정 해놓고 글이 뜨는 대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력서 경력 칸에는 하나도 채울 것이 없었습니다. 햇병아리 사회복지사였으니까요. 반면 자기소개서는 쓰면 쓸수록 자기소설서가 되었습니다. 


졸업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저는 이력서를 열심히 넣고 다녔습니다. 상장 케이스에 고이 끼워 놓았던 자격증을 꺼내 복사를 몇 장 더 했습니다. 처음에 복사해 놓은 걸 다 사용했는데도 저는 여전히 구직 중이었거든요. 언젠가 합격하겠지만 그것이 언제인지 궁금했고,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방문접수를 고수했습니다. 지원서류를 이메일로 첨부해도 된다고 했지만 내가 지원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내 발로 느끼고, 내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누가 붙여준다고 한 것도 아닌데 이력서를 들고 방문할 때마다 마치 출근하는 것처럼 설렜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이 얼마나 어설펐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방문접수에 대한 원칙을 스스로 지킨다며 전철 타고 버스 타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드디어 A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고요! 야홋! 첫 번째 합격 소식이었고 뒤이어 치를 면접도 생애 처음이었습니다. 이를 어쩌지? 무슨 옷을 입지? 파란색? 하얀색? 검정이 제일 무난할까? 선배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언니, 저 어떡해요?"

"뭘 어떡해~! 너 잘할 수 있잖아."

"아... 대답 못 하면 어떡해? 너무 떨려..."

"닥치면 잘하면서 뭘 그리 걱정해? 밥은 먹었어?"

"밥? 아~ 밥을 안 먹었네요!"

"우선 뭐부터 좀 먹자."


언니는 서류 합격을 축하한다고 늘 가던 명동칼국수보다 더 비싼 삼계탕을 사줬습니다. 먹고 힘내라고요. 그 삼계탕이 효험이 있었는지 다음 날 면접에서 예상보다 덜 떨었습니다.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정확하게 기억나는 질문과 답이 몇 개 있습니다.


"이경혜 씨. 집이 여기서 먼데 합격하면 출퇴근은 어떻게 하실 거죠?"

"곧 독립할 예정이라서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서울로 이사하실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아동 업무를 해 보신 적이 없는데 지원하신 이유가 뭐죠?"

"원래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동생도 많은 편입니다. 소외된 아이들을 보면 뭔가 해주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결과는 곧 연락을 준다고 했습니다. '곧'은 며칠을 말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배가 살살 아파왔거든요. 우선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싸르르 아픈 배를 부여잡고 겨우 집에 왔는데 이번에는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엄마는 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시고 바로 응급실로 갔습니다. 어제 먹은 삼계탕이 탈이 났나 봅니다. 그런데 그냥 배탈이 아니었습니다. 병명을 뭐라고 말해 줬는데 들으면서도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하튼 입원을 해서 치료하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설사와 구토, 오한, 발열을 겪으며 몇 년 동안 아플 걸 한 번에 결산하는 것 같았습니다. 컨디션이 조금 안정되면서 피검사인지 초음파인지 한다고 이동 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이경혜 씨죠?"

"네."

"여기 A복지관입니다."


아... 긴장되는 순간. 곧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으니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알려주는 전화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합격>이라는 단어가 들려왔습니다.


"네? 합격이라고요?"

"네. 축하합니다. 가능한 한 빨리 출근하셨으면 좋겠는데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제가 지금 입원 중인데요, 어떡하죠?"


그걸 복지관에 물으면 어떡하나... 바보. 면접은 합격이었지만 결론은 불합격이었습니다. 당장에 퇴원을 못 했거든요. 그 후 퇴원도 했고, 다시 면접도 봤고, 장애인복지관으로 당당하게 출근했습니다.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요?


몇 달 동안 지원서류 들고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가 본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기간 동안 복지관의 규모와 위탁 운영 법인, 이용인의 특성에 따라 기관이 조금씩 다르게 운영되는 걸 보고 배웠습니다. 몇 군데 지원했냐고 묻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지금껏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많이 다녔다는 것만 공개합니다. 불합격보다 슬픈 합격 소식을 한 달 뒤 기쁜 합격으로 다시 쓸 수 있었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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