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사회복지사를 꿈꾼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요. 다만 사회복지사를 처음 만난 날은 기억합니다. 대학 동아리에서 사회복지시설로 자원봉사활동을 갔습니다. 기간은 일주일 남짓이었고 규모가 꽤 큰 시설이라 이용자 별로 각각의 건물에서 거주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영유아를 돌보는 곳에서 야간근무를 했습니다. 주간에는 드나드는 봉사자가 많아 원활하지만 야간에는 그렇지 못해 일손이 더 필요하다는 설명에 당연히 밤에 일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야간 근무자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먼저 자야 했습니다. 밤에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밤에 일하기 위해 낮에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한 채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교대시간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대강 묶고 일어나 아기들을 보러 갔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영유아실은 분유 먹는 소리와 쌔근쌔근 숨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들큼한 냄새도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아기들이 자고 있었으므로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와중에 전혀 잘 생각이 없는, 야간 근무자를 위한 아기도 있었습니다. 그 아기의 바이오리듬은 대낮 같았습니다. 지금이야 세 아이를 키운 경력으로 백일 전에 밤낮이 바뀌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저는 말똥말똥한 아기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거실로 데리고 나와 자리에 눕혀 책도 읽고 까꿍 놀이도 하며 놀았습니다.
거실에는 다른 아기도 나와 있었는데 아기를 돌보는 분과 눈인사를 한 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생아실에 자원봉사 오셨나 봐요?"
"네."
"아기 좋아하나 봐요?"
"귀엽잖아요. 자원봉사 오셨어요?"
"아니요. 저는 여기 직원이에요."
"아. 직원. 여기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요? 그런 과도 있어요?"
"그럼요. 여기 직원들은 대부분 사회복지사예요."
고등학교 때 이과였습니다. 그래서 문과 쪽 학과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문과 쪽 학과가 아니었더라도 사회복지를 대학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남을 돕기 위해 대학에서 전공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저는 '그게 직업이라고요?'라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눈빛으로라도 물음표를 던졌을 겁니다. 왜냐하면 자원봉사 활동을 마치고 동아리실에서 모여 느낌 나누기를 하면서 제가 한 말은 정확하게 기억하거든요.
"저는 이번에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어요. 대학에 학과도 있대요."
이 말이 스스로를 지금까지 이끌었던 것일까요? 그 뒤로 학사편입과 대학원 진학을 통해 결국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막내가 말하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직업,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에 비한다면 많이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공부가 힘들기도 했고,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제일 아쉬웠던 점은 대학에 지원할 때 사회복지학과를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성공한 사회복지사가 되어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고등학교에서 입시 원서를 쓸 때 사회복지학과를 알았더라도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확실했을 때라 상당한 감점을 각오해야 했을 겁니다. 그럼 문이과 선택할 때 문과를 택했다면 더 나았을까요? 아니면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진학했어야하지 않을까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허허 웃음이 났습니다.
돌아갔어도 직진했어도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었을 겁니다. 그냥 느낌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하튼 사회복지 공부하길 참 잘했다 싶습니다. 조금 늦게 했다고 많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고 했으니까요. 사회복지사가 언제 되었든 간에 나의 '두 배로 사'는 여전히 자부심일 테니까요.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사회복지사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