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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Jul 09. 2023

합동등반대회

사회복지시설은 무엇보다 지역사회와 동고동락하는 사이입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없다면 사회복지시설은 존재 의미가 없으니까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간다는 만화영화 주제곡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이입니다. 주민들의 욕구충족과 불편 해소를 위해 사회복지시설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반대로 기관에 무슨 일이 있다면 그 또한 주민들의 참여와 성원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OO시 장애인을 위한 등반대회가 연중행사로 진행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지역 장애인을 위해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이며,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를 포함하여 모두 천여 명의 인원이 이동하는 대규모 이벤트이기 때문에 복지관은 몇 달 전부터 합동등반대회를 준비합니다. 참여하실 분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참여자 모둠별 특성 파악이 제일 먼저입니다. 그리고 난 후 각자의 장애에 따라 자원봉사자의 배치가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휠체어 장애인에게 장정 둘은 필수고, 지적장애인은 빠릿빠릿한 대학생이 제격이고, 어르신은 느긋한 성정의 봉사자가 어울립니다.  


자원봉사자는 기존에 활동하시던 분들은 당연히 포함되고 가까이 있는 군부대와 대학 그리고 기업 내에 조직되어 있는 자원봉사 동호회도 대거 투입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협력한 이력이 있기에 척하면 척이기도 합니다. 등반 당일에 필요한 음료와 간식 협찬을 위해 유관기관을 들들 볶기도 하지만 의외로 이때쯤 되면 필요하실 것 같다며 먼저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대규모 행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안전입니다.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에서는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구급차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이 모든 것을 직원회의를 통해 복지관에서 공유합니다. 복지관 전체 회의는 한 번이 아닌 여러 차례 진행해야 합니다. 회의 때마다 계속 강조되는 것도 있고, 업무분장을 다시 해야 할 만큼 대대적인 변경사항이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등반대회가 가까워올수록 직원회의는 자주 진행되고 그때마다 집중해서 참여해야 합니다. 핑계를 만들어 빠지면 안 됩니다. 제가 한 번 결석했다가 아주 난감했던 적이 있었기에 바로 이걸 강조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점검회의였습니다. 차량배치도를 나눠주었습니다. 지난번에 그리고 지지난 번에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습니다. 회의 앞에 진행되는 관장님 말씀이 조금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 그날 업무일지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고 정시에 퇴근하려면 업무일지가 먼저라는 생각에 회의실을 살짝 빠져나왔습니다. 관장님 말씀이야 당연히 잘해보자고 우리는 독려하는 것이겠고, 차량배치는 당일 아침에 버스 앞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보고 타면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등반대회 당일이었습니다. 대형버스 수십대가 오열을 맞추어 서 있었고, OO시 시장님 개회사와 함께 공식적인 행사에 걸맞은 식순이 진행되었습니다. 날씨도 딱 좋았고 제가 맡은 단체도 인원 점검을 모두 마치고 버스에 탑승할 차례였습니다. 버스,,, 우리 버스를 찾으면 되는데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름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서 잠시 멍하고 서 있었습니다. 이용자들이 저에게 와서 '다들 버스 타는데 우리는 왜 안 타냐?'라고 물으시는데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몰랐으니까요.


우선 부장님을 찾았지만 부장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여 명이 모여 있는 행사장에서 부장님을 찾는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팀장님은 보이기는 했지만 너무 멀었고 또 뭔가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차량 담당 선생님에게 뛰어가 물었더니 "어제 회의에서 변경된 표 나눠드렸잖아요. 그거 보고 이동하세요!"라는 말을 빠르게 뱉으며 자기 버스로 쏙 들어갔습니다. 


아... 어제 회의가 지루하다고, 다 아는 걸 또 강조한다고 투덜댔던 저에게 하늘이 벌을 내린 걸까요? 제가 맡은 이용인들은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수십대의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여기부터 저 끝까지 서너 번을 뛰어갔다가 뛰어 왔습니다. 우리가 타야 할 S관광버스는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버스들 사이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화가 나기는 했지만 누구에게 화를 낸단 말입니까. 버스 배치가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모르는 저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났습니다. 그깟 업무일지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결국 우리 팀은 버스마다 돌아다니며 빈자리가 있는지 그리고 몇 명이나 태워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겨우겨우 탑승 완료하고 출발했습니다. 이후 일정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잘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팀 버스가 그날 결석한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버스 배치가 바뀐 걸 몰랐던 제 탓도 있었지만 그날 딱 한 대가 펑크를 냈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타기로 한 S관광이었던 겁니다. 


다음부터 S 관광의 버스를 이용할 때는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야 한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이경혜가 마지막 회의에 불성실하게 참석하여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던 것을 다들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등반대회가 진행되었다는 평가만을 남긴 채 그 해의 등반대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도 회의에 끝까지 잘 참석해야 한다는 결심을 남겼습니다. 


말단 직원이라고 해서 그 역할까지 말단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온 직원이 합심하여 마지막까지 집중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등반대회가 잘 진행되어 수고했다는 칭찬을 듣긴 했지만 그 칭찬은 영 어색했고 제 것이 아닌 것이 확실했습니다. 내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내 자부심이 될 수 있다는 공부를 한 행사였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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