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May 28. 2023

비와 인터넷의 상관관계

2000년도 초반부터 복지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복지관 업무에 인터넷을 그리 많이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보다는 팩스가 더 편하고 빨랐습니다. 팩스는 보내고 나서 액정 화면에 '전송완료' 메시지를 확인하면 되었지만, 이메일은 전송하고 나서 상대방에게 이메일 보냈으니 확인해 보시라고 전화를 했을 정도니까요. 사실 어느 모로 보나 팩스보다 이메일이 더 빠르고 정확했을 것이지만 과거에 해 오던 대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팩스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더 편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복지관에는 비만 오면 인터넷이 안 된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비가 오는 날에는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창 밖에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인터넷익스플로러를 클릭했는데 인터넷 연결은 되지 않은 채 화면에서는 모래시계를 거꾸로 세우기만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옆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쌤~. 인터넷 돼요?"

"아니. 쌤도?"

"네."

"비만 오면 꼭 이러더라."

"선생님, 근데 남편이 그러는데 이거랑 비랑 아무 상관없대요."

"그런데 왜 비가 오면 모래시계만 돌고 있을까?"

"그러게요. 신기하기도 하지."

"우리 커피나 한 잔 할까?"

"그럴까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 걸 핑계 삼아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동료들과 티타임을 가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비만 오면 게다가 화면에서 모래시계만 보였다 하면 "비 오면 꼭 이러더라. 커피나 마시고 올까?"라며 컵을 들고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얘기는 뻔했죠. 팀장님 얘기, 복지관 얘기, 아기 얘기, 저녁 메뉴 같은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꽤 가까운 직장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지관 인터넷 단말기를 업그레이드하여 허브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함과 동시에 유관기관과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관장님이 설명하셨습니다. 설치하는 당일이 되자 기술자들이 4층 사무실 한켠에 박스처럼 생긴 걸 매달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두꺼비집처럼 생겼는데 그 크기는 가로 40cm, 세로 60cm 정도 되었고, 문을 열면 색색깔의 전기선들이 여기서 저기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복잡한 듯하면서도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선들을 보니 되게 전문적인 고급 정보들을 철통처럼 지키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인터넷은 잘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이 잘 된다고...? 날씨와 상관없이? 비 오는 날에도 변함없이 인터넷 연결이 잘 된다면 창밖의 비를 보며 마시던 우리의 티타임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불가능해지는 걸까요? 옆 선생님에게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메모장 같은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직장 내에서 사용하는 메모장 기능은 직원들끼리 의사소통을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카카오톡처럼요. 


그 뒤 비가 오든 안 오든 상관없이 우리는 메모장을 날렸습니다. '쌤~ 휴게실 커피 한 잔?' 노란 메모를 전송하면,  '지금 갈게요.' 실시간으로 답장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작은 이야기는 날씨와 상관없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인터넷도 날씨와는 상관이 없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비 오는 날 인터넷 연결이 안 되었던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요. 비와 인터넷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았습니다. 단, 우리 마음에서 만요.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이전 07화 합동등반대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