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방구석
만나면 좋고, 헤어지면 더 좋고
문득 누군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뭐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지난번에 어디가 아프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치료는 잘 받았는지 걱정도 되지만 막상 만나자거나 괜찮냐고 묻기에는 뭐랄까 용기가 필요하다. 의자에 앉아 그 친구와의 대화창을 열어 안부를 묻는다. 여기까지 실행했다면 그 친구는 나와 매우 밀접한 사람이다. 보통은 '걔는 좀 괜찮아졌나?' 생각만 하고 말기 때문이다.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십중팔구 언제 얼굴 한 번 보자는 말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내가 화요일과 목요일이 좋다고 하면 자기는 목요일이 괜찮다면서 다음 주 목요일로 약속이 잡히는 식이다. 일정표에 그녀와의 약속을 적으며 마음은 벌써 그녀와 함께 있는 것 같다. 목요일이 되려면 아직 며칠이 남았지만 만남이라는 두 글자가 나에게 저벅저벅 걸어와 옆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약간의 부담과 반가움도 다소 섞인 그 무엇이 내향형 인간에게는 거스러미처럼 여겨진다. 내내 신경 쓰이다가 친구를 만나면 비로소 깔끔하게 떼진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하면서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 TV 광고에서 3배속으로 피는 꽃처럼 내 마음이 활짝 열리고 입은 더 활짝 열려 하하 웃는다. 만나면 이렇게 좋은 걸 왜 머뭇거렸을까.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이 거짓말처럼 잊히면서 친구와 나는 수다수다수다를 떤다. 안부도 안부지만 마지막 헤어졌던 그 순간부터 그랬는데 저랬다 또는 저랬는데 그랬다는 서사를 늘어놓으며 '우리 나이'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공감과 '그래도 그렇지'라는 위로를 서로에게 건넨다. 잘 먹고 잘 자며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라는 결론은 한결같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보게 된다. 조금 지친다. 반가운 만남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좋음' 유효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그렇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며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주위를 환기하면 유효 시간이 조금 연장되는 것 같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훌쩍 넘겨 자리를 정리하고 뒤돌아서며 나는 휴~ 큰 숨을 내쉰다. 항간에 손을 흔들며 자세한 건 전화로 이야기하자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웃지 마시라. 나도 가끔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늘 있다. 하지만 그걸 다하려면 못 헤어진다. 이야기는 끝이 없으니까. 그보다 나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할 만큼 방전되었으므로 충전하러 집으로 가야 한다. 내 충전기가 있는 방구석으로. 그래서 헤어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만나면 좋고, 헤어지면 더 좋다. 서둘러 방구석 내 침대로 기어들어가 I자로 누워 I형의 본때를 보여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말을 벗고 누워야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아 현관문을 열자마자 양말을 벗어던진다. 활동적인 내향형 인간의 클리셰라고나 할까. 천장을 보고 누워 오늘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곱씹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이불킥도 하고 그랬지만 요즘은 친구를 한 번 안아줄걸...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줄걸... 안쓰러운 마음이 더 많이 남는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리라.
가끔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결심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 결이 맞지 않아 대화가 걸치적거렸던 날이 반복되면 더 그렇다. 그럴 때면 헤어지는 것이 훨씬 반갑다. 외향형이라면 다른 친구로 대체되기도 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조용히 그 친구의 이름을 지운다. 비워진 공간은 그대로 둔다. 누군가로 다시 채우기보다는 그냥 두는 편이 낫다. 내향형에게 사람은 금세 다가오거나 재빨리 멀어지지 않는다.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더디고 멀어지는 것도 급하지 않다. 단칼에 자르는 결단력이 부럽기는 하지만 글쎄... 만약 내가 그렇게 한다면 손톱 밑의 거스러미를 잘못 떼어 피가 철철 나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내 사랑 방구석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나도 에너지를 채운다. 60%, 70%, 80% 정도 되면 슬슬 일어나 집안을 살피며 방구석을 돌본다. 방구석과 나는 그런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