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노트_05_산책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 열고 볼 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 말도 못 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고서 뒤돌아가며 후회를 하네
<신촌블루스, 골목길>
어느 골목길인가 그랬던 것 같다. 막연한 '너'를 떠올리며 터덜터덜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겠지만 다시 온다 해도 가슴 뛰게 반갑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는 그런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아버렸으므로 과거로 돌아갈 마음도 없다. 나름의 추억으로 곱씹을 뿐.
얼마 전 아이 셋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특별한 기념일도 아니었고,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섯 가족이 함께 할 기회가 희박하다는 걸 깨달았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개인적인 일정으로, 수험생이 된 막내는 한가로이 지낼 형편이 안 되었으며, 남편과 나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생각에 '가족'을 마음으로만 묶고 있었다. 물리적인 합가를 포기한 지 3년 정도 지났고, 억지로라도 불러들이지 않으면 영영 한 자리에 모일 일은 없겠다는 불안에 가족 여행을 추진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대신 대답을 강요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형식상 동의를 얻고 나서 추진력을 얻었다. 티켓팅과 일정 모두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평소 강요라고는 없는 엄마가 밀어붙이니 아이들은 흠칫 놀라다가도 결국 순순히 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아마도 나의 불안을 눈치채고 알아서 따랐을 것이다.
여행은 좋았다. 목적 자체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으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아 더 좋았다. 신촌블루스의 가사처럼 아무 말 못 하고 후회할까 봐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했다. 되돌아서며 뿌듯했다.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도 비슷했다. 성향과 취미가 다른 남매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부모의 생각을 이해했다.
가정이라는 골목길에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었다. 남편을 만날 때도 떨렸고, 새 생명을 받아들일 때마다 그 떨림은 새로웠다.
가끔은 커튼을 쳤고, 그 커튼이 열리면 열리는 대로 닫히면 닫히는 대로 애태우는 시간들이었다.
바보처럼 한마디 말도 못 할 때도 있었지만 너무 많이 한 것보다는 나았으리라 여기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래서 후회 없이 인사했다. 각자의 인생으로 돌아가 궤도를 돌다 보면 어느 골목길에선가 마주치리라 확신하면서.
골목길을 산책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 골목들이 각자의 인생길이라 상상하니 발걸음에 호기심과 응원이 실렸다. 꺽어진 귀퉁이를 돌 때마다 부침의 시간들이 떠올랐고, 나름의 행복과 기쁨을 연상했다. 그 안에 늘 함께 했던 가족, 특히 이번 가족 여행에서 맡았던 냄새와 아이들의 살갗과 웃었던 장면들을 기억하며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