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와 그의 아내 - 14
울산 우정동에서 살던 집은 마당이 넓었다.
여름이면 마당 한가운데에 큰 고무대야를 놓고 그 안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정동 살던 건 기억나는 것 같아. 그전에는 어디 살았어?"
"반탕골에서 살았지."
"이름도 참. 거기서는 전세로 살았어?"
"전세는 무슨. 10만 원에 3,500원짜리 월세였어."
"3,500원?"
"그렇지. 그리고 돈 벌어서 우정동으로 이사한 거지. 우정동은 고급 살림이었어!"
"고급이었는데 왜 도마교리로 다시 왔어?"
"니네 할머니가 니네 아빠 없으면 농사일이 안된다고 수시로 내려오시는거야. 내려오시기만 하면 눈물바람이 말도 못 했어."
"할머니 성화에 못 이겨서 이사 온 거네?"
"이사 온다고 집을 다 싸서 차에 실었는데..."
"근데?"
"돈이 없어서 출발을 못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희 엄마한테 70만 원 빚져서 올라온 거지."
그렇게 도마교리로 왔다.
도마교리에서의 생활은 넉넉지 않았고, 힘들었다.
할머니는 모든 것이 농사일을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랐을 것이고, 엄마와 아빠는 농사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세 아이.
그래서 장고 끝에 결심을 내렸다.
"반월로 나오려고 땅을 계약했어."
"나 어렸을 때 반월에 살았던 기억은 없는데?"
"그 계약금 돌려받아서 사사리에 영광상회를 산 거지. 900만 원에."
"900만 원이 어딨었어?"
"너더리 논 잡혀서 대출받고, 여기저기서 꿨지."
"우리 엄마 아빠 용감하네! 지금 나 같으면 상상도 못할 것 같아."
"도마 교리에서 너네들 학교 보낼 생각하니까 앞이 깜깜한 거야. 안되겠다 싶었지. 그래서 나온 거지. 그런데 온 식구가 다 말리는 거야. 뭔 장사냐고."
"그때만 해도 내가 일학년이었는데 애 셋을 데리고 슈퍼를 어떻게 했어?"
"그래서 니네 할머니한테 가게 인수인계해야 하니까 며칠 만 봐달라고 삼 남매를 맡겼는데, 그날 바로 다시 데리고 오셨더라고. 니 애는 니가 보라고 하시면서."
"진짜? 엄마 되게 서운했겠다."
"그래서 미칼라 니가 가게를 본 거였어."
"내가? 8살짜리가 뭘 안다고? 계산이나 제대로 했을까?"
"받으면 받는 대로, 못 받으면 못 받는 대로 했지. 엄마가 거기서 닭도 튀겼잖아."
엄마는 슈퍼를 하면서 한쪽에 가마솥을 걸었다. 거기서 닭을 튀겼다. 아빠는 '페리카나보다 니네 엄마가 후라이드 치킨을 먼저 튀겼다'라며 엄마를 자랑스러워하셨다.
8살짜리 꼬막손으로 적은 외상장부가 신일산업 월급날이면 빨간 볼펜으로 죽죽 그어졌다. 신일산업 월급날은 한 달 외상값이 들어오는 날이었으며, 후라이드 치킨으로 회식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신일산업 월급날은 영광상회 부부의 돈 세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되던 영광상회를 2년을 채 못했다.
어느 날 가게에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우리 삼 남매가 엄마보다 먼저 튀어나가 뭐 살 거냐고 물었단다.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들 때문에 도마교리에서 나온 건데 이게 뭔가 싶으셨단다.
아빠는 새벽에 오토바이로 물건을 떼다가 가게에 내려놓고 200미리 우유 하나 마시고 목수 일을 하러 나간다. 엄마는 세 아이와 함께 저녁까지 영광상회를 꾸려나간다. 치킨도 팔고 술도 팔다 보니 소소한 사건도 있기 마련이었다.
고된 일을 마치고 헬멧을 쓴 채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 아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젊은 총각이 술에 취해서 엄마에게 술 주정을 하고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너 이놈의 새끼 뭐야!" 라면서 그놈 님에게 주먹을 날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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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가 사람을 때렸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 너네 엄마만 보이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사람도 아빠 때렸어?"
"아니 내가 주먹을 날렸더니 저쪽으로 하얀 게 툭 날아가더라고..."
"설마 이가 나갔어?"
"어."
"아이고 큰일 났네, 큰일 났어."
나도 너무 걱정이 되는 거야. 그래서 이튿날 일도 못 가고 가게 앞 마당을 쓸고 있는데 걔네 아부지가 저쪽에서 오시는거야. 그래서 속으로 '얼마를 물어줘야 하나' 생각하면서 어서 오시라고 인사했지.
"약주 한잔하실래요?"
"그랴. 막걸리 한 잔 줘."
그래서 내가 벌벌 떨면서 막걸리 한 잔 드렸더니 글쎄....
"다음에 오면 더 때려서 보내." 라고 하시는거야!
"그놈의 새끼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아주. 이게 뭐냐구. 동네 창피하게!"
젊은 총각은 OO 대학교 학생인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술 처먹고 사고 치고 다닌다고 너무 속상해하셨다고 한다. 그러곤 일어나시면서 '다음엔 꼭 더 패서 보내라'라고 당부하셨고, 아빠는 '감사하다'라고 인사하셨다. 나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 같으면 돈도 돈이지만 감옥에 갈 일이라고 진짜 큰일 날뻔했다면서 우리는 40년 전의 일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