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 4
11월 11일 / 두런두런 다락방
어렸을 적에 헤르만 헤세 정말 많이 읽었어. 마치 헤세는 구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 같았어.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됐어. 다시 생각해 보니 나랑 비슷한 나이에 이 책을 썼더라고. 50대는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되는 나이인가 봐.
구도의 경지에 이른 헤세에게도,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50대에도 이르지 못한 나에게 정원이란 무엇일까?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에 감탄하고, 연두 잎을 피워내는 생명력에 미소 짓고, 열매에 감사하며,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겸손을 배운다. 정원에서 그런 걸 배운다. 내가 정원에 대한 사랑을 계속 키워나가면 멋진 50대가 될 수 있을까...
헤세는 나에게 선과 악에 대해 첫 질문을 했어. 헤세를 통해 인생의 고민을 시작했지. 이 책에서는 그런 헤세가 우리의 일상과 비슷한 느낌이더라고. 자연을 동경하는 모습에서 특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생각났다. 깊은 사색을 통해 그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조금 어려웠다. 나는 아직 정원에서 유리알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연에 대한 안목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나는 아직 정원에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
흙에 대한 동경과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 생태의 순환을 읽으면서 태초의 본능은 자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나는 벌레를 굉장히 싫어한다. 하지만 식물을 심고 가꾸는 것은 너무나 좋아한다. 아이러니한 이 현실이 바로 나다. 식물은 자라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그 당에서 다시 식물이 자란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나는 그 순환의 고리 안에서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때론 도움이 되는 인간이다. 그래봤자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이 그것을 유레카 하는 순간은 바로 내가 늙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가 아닐까... 그럴 것 같다. 나에게 늙음이란 그런 것이겠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단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 소유란 그런 것이다.
땅 밑에 까는 방식으로 적당하지 않은 책을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나 놀랍고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나도 다음엔 e-book으로 출간하려고. 글 같지 않은 글 때문에 수없이 베어졌을 나무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자연에 대한 존경과 숭배의 마음이 이런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꼭 종이책을 내고 싶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글 같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무에게 사과하고 필요한 만큼만 쓰겠다고 허락받고 싶은 마음이다. 나무의 허락을 받기 위해 오늘도 글감을 찾아 헤맨다. 그러고 보니... 글감을 찾아 헤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여기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나와 같은 갈급함을 가진 동지들이 있다. 동지라고 불러도 될지... 여하튼 나는 그 동지들 중에 끄트머리에서 글감 여행을 떠나기 위해 채비를 막 마쳤다. 먼저 떠나서 글감 보따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선배들을 부러워하며 질투하며 오늘은 헤세를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