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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 : 평범함에 감사

다락방 - 3

by 미칼라책방

11월 4일 수요일에도 우리는 역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토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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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데이아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에 우리는 모두 "내가?"라고 생각했고, 뒤따라 "그 사람이?"라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다.

"남편이 애인과 결혼을 한다고 이혼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는 메데이아처럼 생각하고, 계획하고,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깊은 슬픔에 잠겨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운 뒤 잘 가라고 남편의 짐을 쌀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모두 나 같지는 않았다.

"나도 메데이아와 별다를 바 없었을 것 같아. 철저한 시나리오를 짜서 남편을 말려죽기 직전까지 몰고 갈 거야. 처절한 복수를 해야지!"

"저는 조금 달라요. 가서 맘껏 사랑하라고 오라고 보내줄 것 같아요. 인생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뭐. 근데 어차피 어디 가지도 못할 남자예요. "

"나는 남편한테 굉장히 의존적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살 것 같아. 그런데 그래도 꼭 가야겠다면 그냥 보내줄 거야."

같은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의 숫자만큼 생각도 모두 달랐다. 아마도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제각각의 모양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구르긴 구른다. 하지만 터덜터덜 굴러가는 것도 있고, 야무지게 굴러가는 것도 있으리.

서양의 팜므파탈이 우리에겐 누굴까?

논개, 황진이, 정인숙... 등의 과거의 인물도 있고, 현재를 살고 있는 인물도 거론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양과 서양의 여성에 대한 입장이 너무나 달라 우리에게는 팜므파탈이 없는 것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여성을 우리보다 더 핍박하고, 착취했다. 산업혁명에 있어서는 앞섰을지 모르나 여성 대우에 있어서는 더 미개했다는데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억압된 여성이 그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데 더 처절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페미니즘이 등장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여성에 대해 관대하고 부드러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논개나 황진이가 명화로 남아 있지 않음은 역사의 핍박이 덜 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가진 이데올로기가 옳을 수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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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책에서 옷을 정상적으로 입고 있는 그림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반나이거나 전나로 그려진 명화들 사이에서 유독 <꿈꾸는 테레즈>는 속치마까지 갖춰 입은 여자아이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그림보다 외설적이고 충동적이었다. 이 그림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규정한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는 것이라는 한 회원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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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교수가 고등학생을 바라보는 눈빛은 살아 있으나 육체적으로 취할 수 없는 그 답답함에 녹아있던 문장은 '늙음이 얼마나 한스러울까!'였다. 테레즈와 은교를 동일화하면서 우리의 토론은 과열되었다. 그 이데올로기에 나도 갇혀 있다면서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는 유명인들의 실명과 사생활까지 거론되면서 우리는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특별히 잘나지 않고, 그냥 이렇게 살 수 있는 평범함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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