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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방문객

다락방 - 2

by 미칼라책방

오늘 회원님들과 토론한 책은 김희진 작가의 두 방문객.


동성애의 접근에 대한 시발점과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동성애 입문서와 같은. 하지만 동성애가 무엇인지 그들의 감정과 아픔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마치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이미 동성애에 대한 책과 영화 또는 드라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고 그것들에 대한 의견 교환의 시간을 여러 번 가졌기에 이번 책은 약간 밋밋했다.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단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서 더 가벼운 느낌이었는지도 몰라. 거미여인의 키스는 동성애자의 감정을 더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감방이라는 물리적 제한이 있는 공간에서 두 남자의 사랑이 기승전결로 마무리되는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고 나서 동성애에 대한 책을 찾아 읽은 것이었다. 오히려 이 책을 완전 초반에 읽고 다른 책들을 읽었더라면 실망감이 좀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Call Me by Your Name", "Brokeback Moutain", "Carol", "보헤미안 랩소디"만 보더라도 그들의 감정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는 좀 더 쉽고 친근하게 그들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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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으로 이별을 결정하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웠어. 커밍아웃하는 연예인들 생각이 나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또는 '그랬겠구나.'라는 안타까운 마음도 많이 들었어. 어쩌면 그들은 목숨과 바꾼 선택을 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


나도 이 책을 읽고 바로 그날 홍석천을 화면으로 만났다. 그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단지 사랑에 대한 기준이 나와 달랐던 것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 물론 글자만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권에 따라 아직 동성에 대한 사랑이 죄악시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치자.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열 번째 사랑까지 했다 치자고. 그런데 돌아보니 일곱 번째 사람이 동성이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고등학교 때 선배 언니를 좋아해 본 경험이 나는 없다. 내 친구가 후배들로부터 그렇게 우상시되는 경우는 있었다. 숏커트에 깡마른 체격이었고, 작은 눈에 안경을 썼고,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말은 청산유수였다. 성격이 굉장히 활달했던 그 친구는 후배들이 가지고 오는 선물과 편지들을 무심하게 받아넘겼다. 후배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다고 난리였다. 그 아이들 중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동성애자인가? 저 언니가 왜 이렇게 좋지?'

잘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는 답답했던 고등학교 야자타임을 견뎌내기 위해 작동한 심리적 기제가 아니었을까... 감히 결론을 내려본다.




상운이가 세현의 사무실에 문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 둘은 서로 알아본 거잖아. 찌리릿. 누가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한눈에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진 거잖아. 그걸 수연은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거고.


"Call Me by Your Name"에서 주인공의 성 정체성을 일깨워준 행인 남자. 그 남자는 어떻게 한눈에 알아봤을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면 나는 내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이 남자랑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결혼을 전제로 만났지만 첫눈에 빠지직은 아니었다. 이 생각에 대한 답은 다른 회원님이 해 주셨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니까 '내가 날 아는 것보다 너를 더 잘 알고 있다'라는 그들만의 공감대가 있는 건 아닐까?"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어. 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선택한 상운, 그리고 상운을 사랑한 세현, 세현과 상운의 비밀을 간직한 채 세현을 사랑하는 수연. 모두 각자의 할 일을 충실하게 해 내는 글이었어. 작가의 의도대로 착착 흘러가는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독자인 나는 할 일이 없었어.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인 나는 동성애에 대한 반성문이라도 써야만 할 것 같은 책이었어.


'오늘의 젊은 작가'였던 만큼 스토리의 견고함은 아쉬웠다. 작가의 의도대로 주르륵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반성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반성보다는 이해를 하고 싶었기 대문에 다들 이 부분에서 함께 끄덕이고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동성애가 소품으로 취급받는 것 같았어. 그래서 엄마의 우아함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니까."

3년을 머뭇거리던 아들의 방 정리를 아들의 성적 취향을 알고 난 다음 날 바로 청소하겠다는 엄마의 심리를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정리는 분노에 찬 복수가 아니라 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의식과도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회원님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 같아. 굉장히 많은 걸 이뤘으니까 이름에 대한 가치가 조금 깎일지언정 크게 잃을 건 없는 거지. 그래서 반대로 말하면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할 만큼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는 그냥 이성애자인 척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상운은 후자였다. 잃을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다. 완벽한 남자. 완벽한 아들.

사람 좋고, 능력 있고, 집안도 좋은 금상첨화와 같은 상운의 환경,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랬다. 그래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지면 덜커덩 넘어져 버릴 것만 같은 위태함이 동성애로 포장되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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