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Feb 07. 2021

좋다, 참 좋다.

목수와 그의 아내 - 19

우리 아빠는 동생이 많다. 그중 막내는 작은 아빠지만 호칭만 막내일 뿐이고 진짜 막내는 고모다. 많은 동생분들 중에 작은 아빠와 막내 고모는 나랑 언니 오빠 해도 될 만큼 나이 차이가 적다. 그래서 작은 아빠와 고모의 중고등학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작은 아빠 고등학교 때 할머니가 작은 아빠 만나러 가셨다가 그날 밤 집에 안 들어오신 것이 기억나서 내가 먼저 작은 아빠에게 물었다.

"작은 아빠~ 근데 할머니 구미역에서 노숙하신 거 알아?"

"어~!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아이고~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너 진짜 그거 어떻게 알았어?"

"아니~ 할머니가 그날 밤 안 들어오셨잖아. 그리고 다음날 오셔서 그러시더라. 구미역에서 의자 붙여 놓고 주무셨다고. 삼촌 면회하고 구미역에 왔는데 막차를 놓쳐서 어쩔 수 없이 노숙하셨다고 해서 내가 할머니한테 그랬어. '삼촌을 왜 그렇게 먼 데까지 보내셨어?'라고."

작은 아빠와 제일 가까운 둘째 형, 바로 우리 아빠는 씁쓸한 그날의 기억을 꺼내셨다. 아빠는 작은 아빠가 다른 고등학교에 다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 막내를 거기가 아니라 금오공고에 보냈어야 했어."

"아빠는 그때 뭐라고 조언을 하셨어?"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으니까."

그랬다. 아빠는 다른 동생들보다 작은 아빠를 늘 애처롭고 대견하게 바라보셨다. 들싸 안고 오 의원한테 달려가던 아기 때부터 종종 등에 업고 병원으로 데려갔던 동생이었다. 유순한 성품에 몸이 약했던 이 동생이 지금은 호탕하게 웃으며 "형님~ 이거 드세요!"라며 예고 없이 들르는 반가운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미칼라는 어딨냐고 찾는 통에 옆동네 사는 죄로 아빠와 작은 아빠의 말동무가 된다. 주로 내가 묻고 어른들은 답을 하신다.

"작은 아빠는 고등학교를 왜 그렇게 멀리 갔어?"

"돈 때문에."

"돈? 학비?"

"응. 국비지원이었거든."

"경기도도 아닌데 그런 곳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그때만 해도 육영수가 밀던 학교였으니까 중학교에서 추천을 했었지."

"우와~ 그럼 작은 아빠 공부 좀 했었나 봐~~?"

"전교 1등은 아니었어~~ 너네 아부지 같았으면 더 좋은 곳을 가셨겠지!"

1등은 아니었고, 아빠였으면 더 좋은 학교를 가셨을 것이라는 말은 '나는 2등, 형님은 1등'이라는 말로 들렸다. 아빠는 어린 동생이 연로하신 부모님 근심을 덜어드리려고 멀리까지 고등학교를 가야 했던 그 시절로 가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할수록 짠한 동생이 따르는 술을 받으면서 '흠흠' 헛기침을 하셨다. 무거워지는 아빠의 눈빛이 보였다. 그래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동생을 멀리까지 보내는 마음이 어땠어?"

"마음이 너무 아팠지."

"그럼 가지 말라고 하지 그랬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나는 너네들이 있었잖아. 내 자식 건사하기도 급급했는데 동생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 부모님도 그때는 정정하셨고."

심정적으로 아빠는 이 동생을 자식처럼 여겼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멀리서 학교생활을 훌륭하게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1학년 내내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촉망받는 장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어 힘든 시기를 겪었다. 

작은 아빠는 그때를 '너무 슬프고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이라고 하셨다. 형수인 엄마는 '너무나 애처로운 시동생'이라고 했고, 형이었던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시기였다. 그 슬픔은 나에게까지 전해질만큼 깊고 큰 것이었다.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이야기다. 분위기가 이렇게 무르익으면 곤란해진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작은 아빠가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근데 미칼라! 지금 나는 너무 좋아. 형님이랑 마주 앉아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냐!"

이날 저녁 우리는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였고, 아빠에게는 엄마와 아버지였고, 작은 아빠에게는 연로하신 부모님이었던 두 분. 함께 사랑했지만 각자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애틋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

목수와 그의 아내는 동생을 배불리 먹여 집으로 보내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좋다.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막내, 진짜 막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