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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Jan 25. 2021

그냥 막내, 진짜 막내

목수와 그의 아내 - 18

어느 날 저녁 작은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미칼라~ 어디니?"

"집."

"김서방은?"

"옆에."

"바쁘니....?"

"아니요. 뭐 드시고 싶은 거는?"

"없어. 빨리 와 인마~!"

작은 아빠와 나는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평소에도 말을 편하게 하는 편이다.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높임말 했다가 친구처럼 반말을 툭툭 던지기도 하는 사이다. 어찌 생각하면 큰오빠 같은 존재다. 나에게 큰오빠 같은 작은 아빠. 작은 아빠의 태산 같은 형님이 바로 우리 아빠다. 아빠가 작은 아빠의 술잔을 채워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날 새벽에 너 안고 오 의원한테 뛰어갔던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



그날 밤의 일은 나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인지 마치 내가 아기를 안고 뛰어가는 것 같았다. 품 안에 있는 아기를 그렁그렁 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의 청년 아빠를 상상했다.



동트기 전이었어. 

네가 숨도 안 쉬고 애가 축 늘어져 있는 거야. 엄마는 나 보구 너를 안으라고 하시더라. 싸개 안에서 눈도 못 뜨는 널 보니까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
엄마가 나 보구 "얘, 큰 맘먹고 가라. 큰 맘먹고...."라고 하시는데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도 모르겠고 무조건 대문 밖으로 달려갔어. 

엄마가 나를 불러 세우시더니 아부지한테 "마지막으로 당신이 침이나 놔주세요."라고 하시더라고. 그 말씀 없으신 아부지가 "그래... 마지막이다." 하시면서 침을 놓으셨어. 너무 작은 아기니까 침 끝만 살짝살짝 다섯 군데를 찌르시더라고. 정수리랑 여기랑 여기랑...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아빠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스무 살 청년이 이제 막 돌이 지난 동생을 안고 새벽어둠을 가르며 뛰듯이 걷고 있었다. 

"제발... 제발..."

무엇을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는지 제발 다음의 말은 잇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빌었다. 도마교리에서 반월 오의원네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답답했던가. 뒤따라 오는 엄마의 안부를 살필 새도 없이 걸었다. 

"어..... 엄마!"라며 아빠는 걸음을 멈췄다. 방앗간 앞을 지날 때쯤 품 속에 있는 동생이 뭔가... 이상했다.


만순네 위에 그 밥집 있잖아. 거기였어. 너를 불렀더니 네가 대답을 하는 것 같더라고. 눈을 뜨고 나를 보더라고. 깨어난 거지. 세상에! 

엄마가 나를 쳐다보시면서 "우리 가지 말까?" 하시더라. 그래서 오 의원한테 가는 발걸음을 돌린 거지. 집에 그냥 왔어.


그렇게 각별한 사이가 되어버린 형과 동생. 그리고 그 사이에 미칼라가 있었다. 내가 살았던 도마교리에서의 기억에 작은 아빠는 약을 많이 먹는 삼촌이었다. 몸이 약해서 늘 할머니와 엄마의 걱정을 맡아뒀었다. 

"형님. 지금은 멀쩡하잖아요~! 하! 하! 하!"

"그렇지~ 그렇지~." 하시면서 두 분은 다시 건배를 하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작은 아빠의 어렸을 때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작은 아빠~ 작은 아빠한테 엄마는 어떤 형수였어?"라고 내가 물었다. 

"너무 좋은 분이지. 특히 기억나는 건 사사리에서 영광상회 하셨을 때였어."라는 작은 아빠의 대답에 나는 조금 놀랐다. 막내 삼촌을 영광상회에서 봤던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영광상회? 왜요?"

"미칼라. 나는 도마교리에서만 살았었잖아. 그런데 형님이랑 형수님이랑 사사리로 이사를 가셔서 가게 구경을 갔는데 세상에~~~~~ 신천지인 거야!! 과자가 막 쌓여있고, 한쪽에서는 통닭을 막 튀기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듣고만 있던 엄마가 작은 아빠의 말을 받았다. 

"십 원짜리 한 장 없던 학생이 도마교리 밖에 이런 세상이 있는 걸 처음 본 거지." 엄마는 그때가 훤히 보이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맞아요, 형수님. 그때 정말 눈이 튀어나오게 놀랐었어요." 

작은 아빠의 대답에는 과거에 영광상회에서 느꼈던 문화충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는 그럼 작은 아빠가 어떤 시동생이었어?"

"시집왔을 때 있는 줄도 몰랐던 시동생이었지."라는 대답에 작은 아빠는 웃고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결혼했을 때 작은 아빠는 이제 막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따져 본 적이 없어서 미처 몰랐던 결혼, 형수님, 꼬마 시동생의 장면이었다. 

"헐. 나이가 그렇게 되나?"손가락으로 꼽아지지도 않는 나이차를 계산하며 내가 물었다.

엄마는 "나 시집오니까 꼬물꼬물 애가 둘이나 있는 거야. 세상에."라며 고개를 저었다.

"작은 아빠랑 막내 고모랑은 꼬마였구나!!"

"그렇지."

"그런데 막내 고모가 있는데 왜 작은 아빠를 '막내'라고 불러?"

"삼촌은 그냥 막내고, 막내 고모는 진짜 막내고."

이건 무슨 논리인가... 여하튼 삼촌은 '막내'다. 집안 어른 중 누군가 "막내야~"부르면 작은 아빠가 대답한다. 막내 고모는 이름을 부른다. 아들과 딸의 차이인 것도 같고, 고모가 예상치 못한 진짜 막둥이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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