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와 그의 아내 - 29
3년 전, 평범한 날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아침에 무얼 했는지 기억을 더듬을 수조차 없는 날이었다. 대녀 아줌마에게 전화가 왔다. 대녀 아줌마는 엄마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허물없이 지내는 유일무이한 이웃이다. 전화기 화면에 '대녀 아줌마'라는 이름을 보고 '아줌마가 무슨 일이시지? 엄마가 집에 안 계시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실 때 나에게 전화를 하신 적이 몇 번 있었다. 또는 내가 어딜 모시고 가야 하나라는 짐작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칼라. 지금 좀 와."
"어디요?"
"집에"
"네."
평소 아줌마는 '솔'이나 '라'에 가까운 음성인데 이날은 굉장히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부르셨다. 평소에 나를 이렇게 호출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을뿐더러, 어딘가에 숨어서 몰래 통화를 하는 듯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것보다 얼른 가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판단에 곧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왔냐고 했다. 대녀 아줌마는 식탁 의자에 앉아 거의 울기 직전인 얼굴로 나에게 손짓을 했다. 미칼라. 내가 문 열고 들어오는데 엄마가 막 울면서 통화를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누구랑 통화를 하시나 하면서 나물 다듬으면서 기다렸지. 엄마가 나물 다듬다가 전화를 받았는지 마루에 나물이 펼쳐져 있더라구.
한참을 통화를 하고 마당으로 나간 엄마가 아줌마에게 주차된 트럭을 보고 물으셨단다.
"대녀~! 저거 누구 차야? 왜 남의 집에 주차를 해 놨어?"
"대모님. 저거 대부님 차잖아요?"
"저게?"
"대모님. 어디 가세요?"
"대녀~! 여긴 어디야?"
아줌마는 빠른 눈치로 상황 판단을 하셨다. 엄마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서 우선 집 안으로 모시고 들어와 잠시 앉아 계시게 하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나에게 전화를 하신 거다.
엄마는 아직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당신의 딸과 대녀가 나누는 대화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큰 아이 때문에 인연이 깊은 한의원이 생각났다. 그리로 갔다. 접수를 하고 엄마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의사는 나를 보고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친정엄마를 소개했다.
"선생님. 오후에 엄마가 늘 있던 아빠 차를 못 알아보시고, 약간 넋이 나가신 것 같아요."
"어디 봅시다. 어머니~ 여기 앉아 보세요. 손 좀 주실까요?"
진맥을 하던 한의사가 나에게 계산도 하지 말고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나는 잠시 멍했다. 한의사가 나를 다시 불렀다.
정말 큰일인가 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 엄마 손을 아가보다 더 꽉 잡았다. 주차장으로 가서 뒷문을 열고 엄마를 태웠다. 빈센트 병원을 갈지 아주대 병원을 갈지 결정을 못 내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우선 주차장에서 나가야 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아주대로 향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엄마의 진료 기록은 대부분 빈센트 병원에 있기 때문이다.
좌회전 차선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꿨으니 차선도 바꿔야 했다. 우회전을 해야 빈센트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앞차와 간격이 너무 가까워 우회전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후진을 했다.
내 뒤에는 SM5가 있었다. 내 차 뒤 범퍼로 SM5 보닛을 들이받았다. 20년 운전 경력에 첫 사고였다. 운전자는 젊은 남자였다. 목덜미를 잡고 내렸다. 나는 괜찮냐고 먼저 물었고, 친정 엄마 모시고 응급실 가는 길이었다고 설명한 후 젊은이와 명함을 주고받았다. 빈센트 병원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구급차 자리에 차를 세운 후 엄마를 응급실로 모시고 들어갔다.
엄마는 기억상실증이라고 했다. 정확한 용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단기 기억상실증 같은 것이었다. 감정이 갑자기 심하게 폭발하여 그 당시 상황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엄마는 날짜도, 요일도, 상황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의사는 괜스레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자연스레 기억이 나면 나는 거고, 안 나면 안 나는 거고.
날짜가 거듭 지나면서 엄마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고, 앞집에 사는 대녀 아줌마도 시간만 나면 엄마를 보러 왔다. 그날 이후 아빠는 엄마 곁을 떠나질 못했다. 심지어 화장실도 혼자 못 가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낳은 생각을 했다. 특히 나는 그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정신이 없었다. 망연자실. 동생들이 응급실로 이른 퇴근을 했고, 나는 동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무섭고 서러웠다. 긴장이 풀렸는지 정신이 돌아왔는지 내가 나 같았다.
엄마의 핸드폰으로 아줌마가 전화한 건 그날이 유일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가 달라졌다. 엄마가 그냥 그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지 않아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없어도 그냥 우리끼리 눈 맞추고 티키타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