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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Jun 20. 2021

흑설공주

다락방 - 7

* 2021년 4월 28일

전래동화는 과도한 권선징악이야. 

인간의 삶은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쁘면 벌을 받는 단순한 원리가 아니다. 상황 속의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의도가 착했더라도 결과가 충분히 나쁠 수 있다. 틀에 박힌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그 연령대의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상황극으로 꾸미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90년대 초반에 쓴 책이라는 걸 명심하고 봐야 해. 안 그러면 페미니즘의 한계에 자꾸만 부딪혀.

이 책은 마치 여성을 억지로 위로 끌어올려 남성 위에 앉히는 것 같았다. 그런 의도적 설정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이 쓰였을 당시를 상상해 본다면 충분히 혁명적이고, 이목을 집중할만했다. 우리는 그 또한 통찰할 수 있는 사회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 흐름에 따라 혁명적이었던 것이 구식으로 전락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는다면 사회적 문제 제기로서는 충분한 책이다. 다만 완성도가 아쉬울 뿐이다.

모아나, 겨울 왕국, 슈렉, 라푼젤, 인어공주... 여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아이들은 벌써 보고 듣고 느끼고 있어. 알고 있어.

이 영화들을 아이들과 보면서 의도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을 불어넣어 주려고 한 적은 없었다. 나도 이 영화에서 여성주의를 엄청나게 느끼지 않았다. 재미있게 봤고, 자연스러운 이야기에 재차 보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는 이미 남녀 역할이 상호보완적이라는 데 익숙하다.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평등은 있을 수 없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색깔이라든지 몸매라든지 이런 건 모두 개인의 취향일 뿐이야. 그건 그냥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해.

분홍색은 딸이고 파란색은 아들... 듣기만 해도 싫다. 나는 분홍보다 파랑보다 초록을 좋아한다.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다. 이상하다 싶은 정도로 기괴한 옷차림이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할지언정 그건 그 옷을 입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당사자는 좋을 수도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너무 앞서가는 정치인을 보면 의식과 현실의 부조화를 느낀다. 우리가 봤을 댄 독단과 독선인데 정작 그는 모르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들의 의식과 말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보면서 더욱더 실감했다. 20대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그들은 모른다. 반정부를 넘어 반정치로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정치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서 유머가 중요한 거다. 감각적인 말 한마디로 우리를 사로잡는 윤여정처럼.

그녀만의 솔직 담백한 입담에 우리는 모두 녹아내린다. 오스카 시상식 이후로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런 것 같다. 전남편 조영남이 '바람난 남자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마저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이 상황은 그가 입을 여는 순간 어떤 말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그는 나쁜 남자가 되니까. 74세라는 고령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가...

74세면 적은 나이가 아니지. 우리도 곧 될 거야. 나는 그래서 전래동화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낯설지만 행복한 단어잖아. '할머니'가.

이 말이야 말로 우리의 한계였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냥 엄마가 아니라 책 읽어 주는 엄마를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손주들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우리의 미래.  그 미래에도 두런두런 다락방 회원님들과 토론하고 싶다. 아마도 그때에는 이런 말을 하겠지?

"나는 우리 손녀한테 이번 주에 전래동화를 읽어줬어."

"추천 좀 해줘. 나는 창작동화를 읽어줬더니 손자가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언니들.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어요. 이거 읽히세요."

아름대운 대화다. 상상이지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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