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와 그의 아내 - 4
"엄마, 외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힘든 적은 없었어?"
외할아버지는 엄마 어렸을 적 돌아가셨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가 안 계시는 것이지만, 외할머니 입장에서는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워내는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졌다.
집성촌이라 의지할 수 있는 구석도 있었겠지만, 층층시하에 그 많은 농사를 떠맡아서 홀로 살림을 꾸려갔을 그 삶이 나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외할머니 생전에 그런 마음으로 따뜻하게 한 번 안아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시골에서 아무리 농사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시키고, 출가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척과에서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한 거야?"
"농사 지은 거 내다 팔았지."
"농사가 많았다며? 그걸 할머니 혼자서?"
"아니 머슴이 도라꾸 타는 데까지 지게로 나르고 할머니는 그걸 장에 가지고 가셨어."
"머슴이 장에까지 지고 가면 안되나?"
"30리 길을 지게 지고 가면 너무 힘들지. 그리고 그때는 도라꾸가 있어서 그걸 타고 다녔어. 그런데 그것도 비 오면 바퀴가 빠져가지고 그나마도 없을 땐 30리 그 먼길을 걸어 다녔지."
몇 년 전에 시댁에 갔다가 외삼촌 뵐 일이 있어서 척과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산골은 아니었지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한....... 참을 달려 들어갔다. 그나마도 동네 안쪽에는 아직 비포장이라 차로 들어가기 굉장히 힘들었다.
엄마 어렸을 적 탔던 도라꾸는 아마도 지금의 픽업트럭쯤 되었을 것이다. 짐칸에 타고 달리다가 내리면 먼지바람으로 눈을 못 뜰 정도였다고 한다.
"도라꾸 타고 다녔을 때가 엄마 몇 살 때였어?"
"국민학교 때일 거야. 그러고 나서 중학교 땐가... 아마 그때쯤 버스가 두 번 정도 다녔을 거야. 하루에 두 번."
"복식이 아줌마가 척과 국민학교 동창인 거지?"
엄마와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친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빠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는 사진첩을 이리저리 넘기며 혼자만의 추억을 꺼내고 있었다.
아빠의 어렸을 적 이야기는 논에 있던 거머리랑, 가난해서 공부를 접어야 했던 것이 다였다. 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는 마치 동지 팥죽에서 몽글몽글 솟아올라오는 새알심 같았다.
문득 엄마와 아빠가 이렇게 다르게 살았는데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결혼해서 힘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