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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Nov 21. 2021

"엄마, 나 가야금 배우고 싶어."

Go, Back - 20

큰아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어느 날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엄마~ 나 가야금 배우고 싶어."

"가... 가.. 야금? 너 악보 볼 수 있어?"

"아니."

"그럼 피아노 먼저 배우자. 악보는 읽을 수 있어야지."

이렇게 아이는 가야금 얘기를 꺼냈다가 피아노를 먼저 배우게 됐다. 피아노를 일 년 배운 뒤 아이가 가야금 얘기를 또 꺼냈다.

"엄마. 나 이제 악보 볼 수 있어. 가야금 신청해 줘"

거절할만한 핑계가 없었다. 방과 후 교실 가야금반을 신청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원래 아침 다르고, 점심 다르고, 저녁에 또 달라지는 것이니 곧 다른 관심사가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한결같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재미를 넘어서는 순간이 온 것 같았다.

"엄마. 나 가야금 갖고 싶어."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금 더 고민을 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 하는 프로그램에서 악기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여러 방면으로 고민을 했고 마침 아이 생일도 되었고 해서 겸사겸사 가야금을 사 주었다.

아이는 좋아했다.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도 좋았다. 살면서 악기 하나 배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란하고 괴로울 때 아이의 마음을 잡아 줄 취미로 가야금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야금을 들고 등교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가야금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보았던 도로 이정표에 적힌 '국악중학교'가 발단이었다. 

처음엔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악기를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던 우리 부부는 그 고민의 시작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헤매고 있었다. 중학교라서? 예체능이라서? 학교가 멀어서? 10살을 이제 넘긴 아이가 입시를 준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자고로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놀고 싶은 거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악기를 전공한다는 것도, 입시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딴 세상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장고 끝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시간이었다. 13살의 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포기를 권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확고했다. 간혹 흔들릴 때는 '엄마, 아빠가 너를 믿고 응원할게.'라며 다잡아 주기도 했다. 

도로 이정표를 보고 시작한 아이의 입시는 합격이었다. 우리 모두 얼떨떨했다. 합격을 알아차리며 한다는 말이 하나같이 "정말?"이었다. 입시 전문 학원을 다니지도 못했고, 순전히 아이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론은 합격. 야홋!

중학교 3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고등학생이다. 

"너 실감 나니? 엄마는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나도 실감이 안 나."

"세상에~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졸업이라니!"

"어."

"어? 그게 다야?"

"실감 나지 않아서 그래."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종이에 ㄱ, ㄴ, ㄷ, ㅏ, ㅑ, ㅓ, ㅕ를  꾹꾹 눌러쓰듯이 아이와 나는 3년을 그렇게 꾹꾹 담아 보냈다. 고등학생이 되면 좀 다를 줄 알았지만 마찬가지의 날들이다. 아이는 여전히 가야금을 좋아하고, 나도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고 응원한다. 



"꿈이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되겠어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음... 나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나의 세 아이는 각자 꿈이 있다. 물론 자주 바뀌기도 하고 이 꿈에서 저 꿈으로 옮겨갈 때 공백기가 생기기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둘째는 꿈의 공백기이고, 막내는 기상청 공무원을 꿈꾼다.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하나요?"


당연히 아니라고 답한다. 그리고 현재 직업을 꼽는다 하더라도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가질 수 없는 직업일 가능성이 더 크다. 직업의 변천사가 워낙 빠르니까. 그래서 아이들의 꿈은 '사람'에 대한 형용사였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손가락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이런 '사람' 말이다.



무얼 하는 '사람'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정확하게 국민학교 1학년 때 '헬렌 켈러' 책을 읽고 그녀의 선생님이었던 '설리번'이 되고 싶었다. 헬렌 켈러는 보기, 듣기, 말하기가 모두 안 되었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던 그녀가 설리번 선생님을 통해 읽고, 쓰고,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에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꿈꿨다. 그 후 나는 여러 다른 직업들을 바꿔가면서 장래희망을 적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직업이 가지는 의미와 영역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때문일까? 반드시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상전벽해가 열 번, 스무 번 될지라도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무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고민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방향을 잘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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