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 9
* 5월 26일 두런두런 다락방
*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온라인에서 진행
나혜석은 진정한 언니야.
요즘 하는 말로 센 언니란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하는 여자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혜석은 센 언니보다 한 수 위인 진정한 언니라는 데 우리 모두 의견을 모았다. 특히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이 우리 모두를 넘어서는 신세대다. 사교활동을 통해 기분전환을 하면서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된다며 반복적으로 말하는 그녀를 읽고 있자니 내가 구닥다리 복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나혜석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를 잘 알게 되어서 좋았고,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다만 아쉬웠던 것은 백 년 전에 존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일 뿐. 뚜렷한 주관으로 인생을 열심히 사는 그녀는 사회에 뿌리 박힌 편견에 온몸을 던져 저항한다. 시집가라며 학비를 끊는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업을 지속하는 그녀도 대단하다. 멋있다. 나라면 "네..." 하고 결혼했을 것 같다. 특히 '이혼 고백장'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혼에 대한 편견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은지 김우영을 배드 파더스에 고발하고 싶었다.
김우영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청혼이었던 거야. 나름 깨어있었던 거지. 다만 자격지심 때문에 결국 이혼을 요구했지.
사랑하는 여자의 전 남자 친구 묘를 찾아가 위로하고, 비석을 세워주고, 여자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며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그 결혼은 나혜석의 꼿꼿함과 김우영의 자격지심이 충돌하며 파국에 이르렀다. 최린과의 스캔들은 그냥 좋은 빌미였을 것이다. 최린이 아니었더라도 그 전이나 그 후에라도 이혼은 했을 것 같다.
김우영은 나혜석을 감당할만한 깜냥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이었을 것 같다. 일분일초를 쪼개가며 생활한 나혜석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모든 것에 성실했다. 더불어 본인의 직업에도 충실했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다.
지금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을 것들을 나혜석은 현실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어쩌면 김우영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의 마음, 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으리라. 나혜석이 '부부의 정의'라고 표현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특히 김우영 주변인들은 그 부부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는지 이혼을 부추기는 각종 행태를 했고, 이에 김우영은 더욱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럼 김우영의 엄마 입장은 어땠을까? 시어머니도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했던가? 내가 시어머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며느리 없는 사이에 농을 뒤져 돈 될 건 다 털어가는 시어머니를 나에 대입하는 것조차 달갑지 않았다. 그 집안에 아니 그 시대에 오직 나혜석만 지금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들이 며느리에 비해 자꾸만 작아지는 모습을 목도한 엄마가 가만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것도 백 년 전에 말이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아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차피 사돈 댁에서도 안 본다는 며느리를 내가 내친다고 큰 죄책감은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나혜석을 읽으면서 박래현이 생각났어. 그녀도 세 아이의 엄마이자 화가였거든.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박래현은 1920년생이다. 나혜석의 시대와 차이가 있다면 많은 것이고, 별다를 바 없다면 또 시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결론은 세계관으로 접어들었다. 그녀가 말한 '가정과 일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건 '주체적 결정'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혼도 그녀가 결정한 것이다.
단어만 바꾸어서 반복한다. 회원님들이 하신 말씀이 너무 멋있어서.
인간적인 신념을 잃지 않고, 소신을 밀고 나가는 나혜석은 정말 멋지다.
* 붙임 : 최린을 사랑하지만 가정은 깨고 싶지 않다며 이혼을 거부했던 나혜석을 보며 손예진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