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겨울 추억
겨울 하면 눈, 눈 하면 겨울.
그래서 겨울과 관련된 추억에는 눈이 많이 등장한다. 비싼 당근을 코에 꽂은 눈사람, 눈밭에 뒹굴면서 옷을 다 버렸었고, 썰매 타다가 데굴데굴 굴렀는데도 어디 하나 부러진 데 없다고 하하 웃었었다. 결혼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팀장님 이하 팀원들이 함께 태백산 겨울 야간 산행을 했었다. 그때 나는 아이젠을 비롯한 겨울 산행 물품들을 일괄 구매했었다. 겁도 없이 샀던 등산용품들은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사랑의 작대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이야 춥고 미끄럽고 차 막힌다는 이유로 겨울이 심드렁해졌지만, 기억나지 않는 나의 과거조차 겨울은 행복한 눈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겨울에 있어 눈은 Default value(초기 값) 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호주 산타는 비키니를 입고 다닌대."
"거짓말."
"진짜야!"
"산타가 얼어 죽으려고?"
정말 충격이었다. 지구과학을 배우면서 그걸 몰랐단 말인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와 남반구의 계절은 반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나라가 추우면 남반구에 있는 호주는 한여름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당연한 거였다. 나만 몰랐던 것이었다.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서 성탄 축제를 하는 사진을 보았을 때는 마치... 뭐랄까... 어렸을 적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아챘던 그 순간만큼이나 크게 실망스러웠다. 나의 로망 하나를 세상에 뺏겨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뭘 믿고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이 빠졌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햇볕 쨍쨍한 12월 25일이라니!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눈이 올 때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송이를 뿌려준다고 무척이나 흥분했었는데 이젠 아이들도 눈이 오면 오나부다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남반구의 뜨거운 겨울에 대해 나만큼 실망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럴 순 없다. 심드렁한 엄마와 오나부다하는 아이들에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이미 물 건너갔으니 White January를 몰래 계획했다. 눈 오는 어느 날 아이들과 손잡고 뽀드득뽀드득 걸으며 용돈을 줘야겠다. 주머니에 꾹 찔러 넣어주며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아이가 셋이니 봉투를 세 개 마련했다. 따로따로 데이트하려면 1월에 최소한 눈이 세 번은 와줘야 한다. 우리들의 추억을 위해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힘써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