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내 집이라면

10 - 나의 인생 책

by 미칼라책방

책 읽기를 즐긴다. 작년에 읽은 책을 헤아려보니 271권이었다. 동화책과 그림책을 포함한 숫자이므로 거품이 좀 있다. 솔직한 말로 이건 1년에 271권을 읽었다고 뻐기는 것이다. 함께 쓰는 동지들에게 번지르르하게 자랑할 수 있어 좋다. 271권. 허허.


작년에 읽은 흐름을 보니 일주일에 1권은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도서였고,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한 신간이 있었고, 강유원과 같은 저자에 꽂혀 몰아 읽기를 했었다. 나머지는 식물 서가에서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간다. 반납하러, 대출하러, 모임 하러 수시로 드나든다. 도서관이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매번 QR 코드 찍고, 체온 재고, 손 소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까. 몇 년을 그렇게 했더니 신문에도 났었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책 육아를 주제로 대문짝만 하게 실렸었다.


중학교 다닐 때 도서관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 동네에는 없었고 11번 버스를 타고 40분을 넘어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넓은 로비와 우리 집보다 몇 배나 넓은 서가, 더 넓지만 냄새나는 열람실... 그야말로 신세계.


중학교에도 국민학교에도 도서관이라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독후감 숙제는 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헬렌 캘러'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었다. 책도 낯설고 원고지는 더 낯설었다. 고모가 쓰던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정말 열심히 썼다. 저녁을 짓던 엄마가 나를 보고 '책을 보고 베끼면 어떡하냐'라고 핀잔을 줬던 것도 기억난다.


아마 그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던 것 같다. 상보다 더 기억나는 건 헬렌 캘러를 도운 설리번 선생님이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을 어떻게 그렇게 성심성의껏 지도할 수 있는지! 40년 전에 읽은 장면이 마치 눈앞의 광경처럼 펼쳐진다. 헬렌의 손바닥에 물을 흘려주며 'WATER' 이라고 손바닥에 쓰고 나서, 그 손바닥을 그대로 설리번 선생님의 목으로 가져가 "워터"라고 말하며 소리를 느끼게 했던 모습은 글자 그대로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이제 여기저기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이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책이라곤 선생님이 독후감 숙제하라고 빌려주신 그 한 권이었는데 그 책은 나의 인생 전반에 뻗어 있다. 아직까지 그 감동을 뛰어넘는 책을 만나지 못했으니 '헬렌 캘러'를 나의 인생 책으로 꼽는 것이 맞긴 한데... 그렇게 하기엔 도서관에 있는 수만 권의 책들이 나에게 섭섭해할 것 같아 약간 조심스럽다.


나는 그 책들을 전부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책밍아웃이라고 해야 하나? 북밍아웃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인생 책 포함해서 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이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