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o Back 고백

1+3

Go, Back - 3

by 미칼라책방

아이들 어렸을 적 나의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았다.

아이들의 입학과 이사, 그리고 남편의 장기출장까지 겹쳤던 시기가 있었다.

낯선 동네에서, 낯선 집과, 낯선 사람에게 아이들을 아침마다 넘겨야 하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학교에 보낸다고 하면 되는 것을 왜 낯선 사람에게 넘긴다고 여겼는지,,,

되짚어보면 그때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불완전해 보였다.

주중에는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 힘들었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느라 힘들었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우울했다.

그래서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다란 가방에 먹다 남은 빵과 과자와 음료수를 담았다.

그리고 출발.

과학관, 박물관, 식물원, 미술관,,,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던 것 같다.



고고학자.jpg

경기도박물관에서 [ 유물 발굴 체험 ]을 할 수 있다기에 신청했다.

아들들이 고고학자로 변신하는 동안 나는 막내를 데리고 박물관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에 접선한 우리는 박물관이 문 닫는 시간까지 놀았다.

"얘들아 집에 가자."

"어~"

웬일로 순순히 간다고 할까 싶었는데... 고인돌에서 한참을 뛰어놀았다.

이 돌 밑에 부족장의 시체가 이 밑에 있네 없네... 설전을 벌이다가 바다 건너에 있는 아빠에게 물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경기도박물관.jpg




엄마와 아이들 셋. < 1+3 >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1+3 >으로 전국을 여행 다녔고, 비행기도 탔다.

푸동 공항에서 입국 도장 찍으면서 받았던 질문.


"Only four?"


그 질문의 속뜻은 아마도 '이 여자가 남편도 없이 애를 셋이나 데리고 여길 왜 온 거지?'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던 나. 아무것도 못하던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장족의 발전을 했다.

내가 아이들을 키웠는지, 아이들이 나를 키웠는지.


서로가 서로를 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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