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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잔 Oct 14. 2022

새벽기상이 싫어서 퇴사했습니다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임신준비




예전에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예능에 나와 밝힌 퇴사사유가 신박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새벽 출근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단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겠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퇴사를 꿈꿨다. 아침잠이 많은 데다 추위에 약해서 겨울이 특히 괴로웠다. (이 기회를 빌려 출근 시간 나를 지켜준 기모 레깅스와 털부츠, 롱패딩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렇게 어렵게 출근했어도  모두가 사무실에 나와 일해야 하는 건지   없었다. 오가는 대화도, 딱히 걸려오는 전화도 없이 종일 자기 모니터만 보는 날이 많았고, 9시부터 6시까지 내내 일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장님 말씀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도 내내 게임만 하는 사람보다 월급을  받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은 그런 회의감을 핑계삼아 반충동적으로 백수가 었다. 공교롭게도 결혼한  5개월 만이었다. 출근 대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저녁이면 보글보글 찌개 끓여놓고 남편 맞이하는 주부놀이도 해봤다





그러면서도 불안해서 채용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회사 위치나 담당 직무가 괜찮은 곳에는 서류를 넣었지만 어쩐지 예전만큼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한 회사의 면접을 봤다. 이전 회사보다 더 자주 야근을 해야 할 듯한 분위기에 책임도 무거워졌지만 연봉은 엇비슷했다. 급여를 조금만 더 높여줄 수 없느냐고 하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옥잔 씨는 자녀 계획이 있으시죠? 육아휴직에 곧 들어가실 분이라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조금 울었다. 불안감이 좌절로 바뀐 날이었다.


그리고  다른 면접을 보게 됐는데 꽤나 까다로운 질문이 많았지만 느낌이 좋았다.  면접관은 임신 계획은 물론 결혼 여부조차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사와 회사에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입사한  처음이었다.   겨울은 13 만에 처음으로 한강이 얼지 않은 역대 가장 따뜻한 겨울이라고 했다. 나는 종종 정장 바지에 코트를 입었고, 집에서 조금 일찍 출발해 회사  건물에서 커피를 마시고 출근했다. 그때 다짐했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절대  일을 놓지 않기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며칠 전이었다. 이직이 아닌 휴직을 앞둔 상황은 처음이라 인수인계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만든 여러 기획서, 보고서, 귀한 자료들을 개인 크라우드에 올려놓고 나니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것들을 블로그 포스팅 하나로 압축해보기로 했다. 이제  회사에 입사한 10  나에게 주는 가이드라인처럼 바로 써먹을  있고, 곧장 성과가 나올만한 정보들을 정리해 두었다. 아이를 을 때 뇌도 함께 낳는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까먹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 포스팅 아래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기업 블로그 운영에 관심이 있으신지 문의드려요.
아기가 어려서 일을 하고 계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유아 관련 브랜드이고 브랜드 개설부터 준비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혹시나 재택으로 업무가 가능하시거나 소개해주실 업체가 있으시면 연락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010-XXXX-XXXX 김미영입니다!


전화기 너머 김미영(가명) 팀장의 목소리는 밝고 씩씩했다. 자신도 워킹맘이라고 했다. 나는 곧장 실무자와 연결되었고, 아이가 두 돌이 지난 지금까지 그 회사와 일해오고 있다.





"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면(外面)화되는 모든 것의 상징이고 원인이다. 그러면서도 돈은 개인의 가장 고유하고 내면적인 것을 지켜주는 수문장이기도 하다. “ -게오르크 짐멜


나는 매일 감사함을 느낀다. 내 영혼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돈을 번다는 것이 그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육아하느라 휴직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인사팀장이 왜 퇴사하냐고 할 때 어차피 거기 제가 돌아갈 자리는 없잖아요.”라고 소심한 잽을 날릴 수도 있었다. (나를 다시 채용해 준 고마운 회사였지만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고초를 겪던 팀원들이 하나 둘 퇴사했으며, 결국 새로운 팀장이 내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깨끗한 몸이 아니다. 임신 전에 마신 술이 유산이나 사산의 위험을 높인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임신 준비는 어떻게 하면 회사 밖에서도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끝내놓고 실천하는 거다. 막연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가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5명에 1명은 된다. (통계청 2017~2021 여성 경력단절 규모) 


내 지난 회사 생활에 대한 한 가지 후회는 민망하다는 이유로 셀프홍보를 뒷전으로 놓고, 귀찮다는 이유로 네트워킹에 공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여성이고, 어느 정도 일을 하는 사람이며, 출산할 계획이 있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을 고려해보자. 이미 임신했고, 출산했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같은 일이라도 남들과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기

그렇게 시도한 것에 대해 성과를 주기적으로 기록해두기 (구글스프레드시트 같은 좋은 앱이 너무 많다.)

발표나 인터뷰 기회가 온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런 노력들을 공유하기 (실패든 성공이든)

회식은 안 가더라도 업무 관련 네트워킹은 열심히 찾아가기

개인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성과를 꾸준히 기록하기 (광고로 팔로워를 키우기 적합한 인스타그램을 좀 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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