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현대자동차 기업 PR '우리가 달려온 길, 나아갈 길']
2010년인가,
한밤중에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축구가 FIFA 주관 세계 대회에서
무려 결승에 진출했던 그 경기.
우승한다면 진짜 대박 아닌가!
우리나라 축구가 처음 세계를 제패하는 건데...
야밤에 숨죽여 혼자 응원하며 보던 중,
와이프가 자다가 나오면서 한 마디 했다.
"이거 뭐야?... 아니...
자기는 여자 중학생 축구하는 거까지 봐?"
아! 음... 아니... 그게... 그런가?
FIFA U-17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이었으니,
틀린 타박이 아니라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물론 끝까지 응원하고, 마침내 우승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늦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타박이 참 스스로도 웃겼다.
그래도 그런 타박을 들을만한 사람들 덕분에
지금은 어떤가?
여자 유명인들이 모인 아마추어팀의 축구 경기를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보여주는 정규 방송이 있다.
바로 "골 때리는 그녀들",
은퇴하신 우리 아버지까지 이 프로그램의 팬이다.
사실, 예능방송을
실제 여자축구의 인기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여자축구가 이만큼 되기까지는 드라마틱했다.
[현대자동차 기업 PR '우리가 달려온 길, 나아갈 길']
처음에는 그저 아주 잘 찍은
하나의 광고이자 콘텐츠로 보였다.
그런데 우연히 기사를 접해보니,
이건 하나의 역사책이었다.
여자 축구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남자 선수들과 대결을 하던 이벤트를 지나,
여자 축구 월드컵으로 발전해 온 실제 역사에 기반한.
여자축구의 역사이자,
어쩌면 여성 인권 증진 과정을 담아내서 울림이 크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공부한 노력과
그걸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짜임새가 매우 훌륭하다.
축구 경기를 직접 보는 듯한 역동적인 움직임,
빠른 화면 변환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화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모델들의 감정선.
화면의 색감과 음악...
요 제작진의 재능이 살짝 샘이 났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여자축구 관련 콘텐츠가 아니라
공식후원사 현대자동차의 광고라는 점.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벌어지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TV시청의 양도, 집중도도 높아진다,
수많은 광고주들이 이슈를 노리는 광고를 쏟아낸다.
그중에서도
공식후원사 타이틀을 가진 회사는 더 부담이 된다.
공식후원사라서 회사 노출도 많아져서 좋지만,
그보다 더한 노력과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자했으니,
광고 전쟁에서도 다른 광고주들을
압도하는 결과를 원하게 된다.
'우리만 공식적으로 연결된 기업이니,
우리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이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 현대자동차는
'앞장서되, 나서지 않는다'
Hyundai Presents,
당신이 달려온 길.
그리고 우리와 함께 나 아길 길.
Supported by Hyundai since 1999.
Goal of the century. HYUNDAI
2023 FIFA WOMEN WORLD CUP.
Official Partner.
첫 화면에서 타이틀 자막으로 문을 열지만,
여자축구 역사와 선수들에게 보내는 헌정사를
아주 당당한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현대차의 노출이나 메시지 등은
철저하게 조연으로서만 역할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지막 엔딩에
짧고 강하게 현대차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광고주의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진짜 대상을 위하는 마음이 보이는,
이 정도 진정성이라면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광고를 잘 만든 제작진도 칭찬해주고 싶고,
이기심을 참고 진정성을 보여준
(이토록 희귀한) 광고주도 칭찬해주고 싶고,
세상에 이런 광고주가 많아야
좋은 광고도 많이 나온다고 떠벌리고 싶고,
하. 이런 광고 만드는 거 좀 부럽네.
광고인으로 이런 캠페인 하나 갖기 어려운데...
부럽다.
본 광고의 인용이 불편하시다면,
누구든, 언제든 연락 주세요. (출처: tvc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