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담자는 ‘침묵’할까?

제3화

by 그래도

1. 상담실에서 침묵은 낯설고도 익숙한 손님입니다. 내담자가 말을 멈추는 순간, 공기는 잠시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 어떤 마음이 오가고 있는지, 상담자는 조심스럽게 기다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지금 이 침묵을 내가 방해해도 될까?”


2.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관계에서의 예의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을 ‘막힌 것’, 혹은 ‘관계가 멈춘 신호’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종종 불편함, 두려움, 혹은 저항처럼 읽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담 안에서의 침묵은 단지 말이 멈춘 상태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감정이 차오르고, 말보다 마음이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3. 정신역동적으로 볼 때, 침묵은 억압된 감정이 의식 가까이까지 올라왔지만, 아직 말로 담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습니다.

말하려다 멈추는 순간, 마음속 깊은 감정들이 상담자의 표정을 살피며 머뭇거립니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이런 감정을 꺼내도 괜찮을까?'

진짜 감정이 말이 되기까지는, 마음속에서 충분히 안전해졌다고 느끼는 시간이 먼저 필요합니다.


4.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이 침묵을 내담자가 상담자라는 ‘대상’을 시험하는 방식으로도 봅니다. 침묵 속에서 상담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이 사람이 내 감정의 무게를 견뎌줄 수 있을까?”, “내가 무너져도 괜찮을까?”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이 침묵을 억지로 끌어내려하지 않고, 그저 옆에 머물며, 말 없는 마음을 함께 견딥니다.


5. 침묵이 언제나 감추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하지 않는 그 순간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담자의 마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엔 어쩌면 말보다 더 크고, 더 오래된 이야기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6. 상담자는 이 침묵이 불편하지 않도록 자기 내면을 다독이며 기다립니다. 이때 상담자의 태도는 말보다 더 깊은 언어가 됩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이렇게 있어도 됩니다.’ 이런 메시지를 상담자가 온몸으로 전할 수 있다면, 그 침묵은 언젠가 말이 되고, 감정이 되고, 관계가 됩니다.


7. 저 역시 상담실에서 침묵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직도 그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불쑥 올라옵니다.

하지만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어떤 말보다, 함께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 더 깊은 위로가 될 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내담자는 여전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은 없지만, 관계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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