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함, 리바이어던, 그리고 관음증의 세계 (하)

도서 '투명사회' 함께 읽기

by 그리다 세계여행

*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7.


기술발달에 따라 개인이 ‘보여지지 않을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내가 애플리케이션으로 택시를 부를 때마다, 인터넷쇼핑으로 주문을 할 때마다, 밖에서 카드로 물건을 살 때마다 우리의 삶은 기록되고 있으며, 밖을 걸을 때면 CCTV가 우릴 지켜보고 있죠. 그나마 CCTV는 한 위치에 고정되어있어 사각이라도 있지만, 만약 구글 글래스가 개발되었을 때도 우리가 촬영되지 않을 곳이 있을까요? 우리는 바야흐로 디지털 파놉티콘의 전방위적 감시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베일에 싸여있을 권리는 없습니다. 투명성의 이데올로기가 베일을 허락하지 않기에, 그것을 폭력적으로 들춰낼 것이기 때문이죠.

21세기의 디지털 파놉티콘은 더 이상 하나의 중심, 즉 전능한 독재적 시선에 의해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원근법적이다. (중략) 비원근법적인 투시촬영은 원근법적 감시보다 더 효과적이다. 모든 것이 전 방위적으로, 도처에서, 모두에 의해 훤히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94페이지)


과거의 파놉티콘(좌)은 이제 디지털 판옵티콘(우)로 진화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밌는 일화가 있어 들려드릴게요, 미국의 대형마트 중 하나인 타깃(Target)은 한 십대 소녀의 구매기록에 무향 로션, 미네랄 보충제, 약솜 등이 지속적으로 추가되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이 임신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집으로 아기용품과 관련된 쿠폰을 보냈는데요, 문제는 소녀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대형마트로부터 자신의 딸이 임신했다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이처럼 현대사회는 한 사람에 대해서 기업이 부모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세상, 나만의 비밀을 지켜낼 수 없는 세상입니다. 섬뜩하지 않으신가요?



8.


투명성이 낳은 또 다른 문제점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단순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투명사회에서는 모든 거리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부정성으로 간주된다. 거리는 커뮤니케이션과 자본의 순환을 가속화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투명사회는 내적 논리에 따라 모든 형태의 거리를 제거한다. (중략) 거리의 부재로 인해 지각은 촉각적 성격을 띠게 된다. (중략) 거리가 사라짐에 따라 어떤 심미적 관찰도, 어떤 머무름도 불가능해진다. (36페이지)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베일도 아니고, 가려진 대상 자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베일 속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대상은 베일이 걷히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중략) 오직 아름다움만이 가림과 가려짐 속에서 본질적이고, 아름다움 외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의 신적인 존재 근거는 비밀에 있다." - 발터 벤야민, (48페이지)

돌이켜보는 사유, 깊은 사유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거리 밖에서만이 대상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가 있는 것이죠. 동시에 가려져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면 생각을 해야 할 이유도, 여지도 없기 때문이죠. 발가벗겨진 대상은 아우라는 물론 아름다움마저 박탈당한 채, 포르노적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노출이 너무 심하면 관능적이라기보다는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인거죠.


인류의 사고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해가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왔습니다. A마을의 사람들만 전염병이 걸리지 않았다면 그 마을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 간주하고 다양한 가설을 세운 뒤에, 그 가설을 하나둘 검증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숨겨져 있는’ 인과관계를 찾아내왔죠. 하지만 투명성의 시대는 더 이상 인과관계를 찾지 않습니다. 단지 상관관계만이 중요합니다. 몇 없는 데이터로부터 세계의 이면을 읽어내려던 시도는 이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데이터를 골라내는 작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언어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든 이론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분류법, 존재론을 잊어버려라. 심리학도 잊어버려라.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대체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그냥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밀함으로 그것을 탐지하고 측정할 수 있다.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숫자가 스스로 말하기 마련이다." (219페이지)

이 과정에서 인간의 사유는 갈수록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단순함의 순환에 빠져듭니다.


9.


투명사회의 가장 무서운 점은, 개인이 스스로 투명사회를 돌아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의 관음증을 통해서 타인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동시에 바라봐지고 있습니다. 내가 타인의 SNS를 보면서 그의 삶을 바라보는 동안, 누군가는 나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내가 뭘하고 사는지를 알게 되죠. 하지만 바라봐짐의 시선은 디지털 세계의 특성 상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직접’ 바라본다면 놓칠 수가 없겠지만, 나의 페이지를 보는 사람은 트래픽 하나로만 찍힐 따름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고 인식하기엔 너무나도 가볍죠.


더불어 투명사회는 겉으로 보기엔 효율성과 편리함이라는 긍정성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돌아봐야겠단 필요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당장 내 삶이 어렵고 불편하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려 들겠지만, 배부르고 등따신데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들잖아요. 내게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피해가 보이지 않는 이상 사람은 쉽게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투명사회의 강력함입니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투명성의 지배는 ‘백성들을 벌을 주는 과거의 규율권력이 아니라 당신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것 같은) 생生 권력이자 긍정성의 권력’이기에 혁명과 같은 방식으로 집단적인 거부반응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시스템은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이어지겠죠.


10.


자, 이제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투명사회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구요. 사실 어느 정도의 투명화는 도시화와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근대화 이전의 기껏해야 100~300명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어차피 다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가 데이터화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괜히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속담이 있었겠어요?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기에 그 사람들 모두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합니다. 그래서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서로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행정화가 동반되는 겁니다. 이는 필연적인 수순이에요.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투명성이 이데올로기가 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든 것이 투명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자신을 넘어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데이터의 수준으로 무너지니까요. 그렇게 모든 것이 데이터화된 사회는 신뢰가 부재하는 곳이 됩니다. 투명성과 신뢰는 비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신뢰라 함은 ‘공개된 데이터가 없어도 상대방을 믿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상대방의 말을 믿을 필요가 없죠. 단지 내가 알고 있는 데이터와 상대방의 말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에요. 믿음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투명성의 명령에 대하여 반기를 들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모든 관념과 제도가 그렇듯이,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우리에게 이롭게 활용되어야 합니다. 홉스가 제시하였던 리바이어던도 결국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는 지옥도를 돌파하기 위한 필요악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만약 투명성이 누군가의 자유를 제약하는 하수인으로 변질된다면 우리는 언제든 ‘왜 투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 투명성이라는 리바이어던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우리의 삶을 지켜낼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들어줘서 고마워요.


※ 썸네일 정보 : <Destruction of Leviathan(1866)> by Gustave Dore


※ 함께 읽어볼 것들

1.소설 <1984> 조지 오웰 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회가 완벽히 투명해졌을 때 시민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합니다. ‘완벽한 투명사회’의 무서움을 묘사하는 작품들입니다.


2. 도서 <피로사회> 한병철 作

<투명사회>의 저자 한병철 씨의 대표작입니다. 그의 저작에는 특정한 개념들이 연결되며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투명성이라는 개념도 <피로사회>가 말하는 ‘긍정성’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이해가 더 쉬워집니다. <피로사회>에 대한 리뷰는 제 브런치에 ‘죽은 노동의 사회’라는 글에도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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