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에서 살아남기 (상)

"소비의 역사" 깊이 읽기

by 그리다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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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 새로 산 물건이 있으신가요? 아마 여러분의 대부분은 편의점에서 커피 하나라도 사셨을 거예요.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2018년 1인당 카드결제 승인건수는 약 397건이라고 해요. 하루에 한 번씩은 카드를 긁은 것이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현금거래까지 감안한다면 우리에게 무언가를 ‘산다는 것’ 혹은 ‘소비한다는 것’은 굉장히 일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에 대해서 갖는 인식은 썩 좋지 않습니다. 통장을 보며 항상 ‘소비를 줄여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을 ‘소비적(혹은 소모적)이야’라고 표현하죠. 반면 소비의 반대편에 있는 ‘생산’은 좋은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회의가 생산적이었다’, ‘생산적인 관계에 있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경제활동의 양대산맥인 소비와 생산이 받는 시선의 온도 차이는 자못 분명합니다.


살다보면 직업을 갖지 않는 기간도 있으니 우리는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는 순간도 있지만,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소비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생산보단 소비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는 왜 소비를 미워하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도서 “소비의 역사”를 읽고 ‘소비’라는 개념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소비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서 돌아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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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과 여성복. 각각의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남성복의 이미지는 정장이 떠오르겠죠. 색상은 검은색이나 네이비 같은 짙은 색일 거예요. 반면 여성복이라고 하면 드레스, 블라우스, 치마, 원피스 등 다양한 것들이 떠오르고 색상도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날거에요. 당장 백화점 남성복 코너만 가도 옷들이 비슷비슷한데 여성복 코너는 연령대별로도, 브랜드별로도 특색이 살아있죠. 개별 디자인에 있어서도, 패션의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도 여성복은 남성복보다 훨씬 화려합니다.


하지만 서양복식사에서 남성복이 여성복보다 간결하고 수수해진 것은 몇 백 년도 되지 않은 일이에요. 같이 읽어볼까요?

유럽에서 남성의 복식이 여성의 복식에 비해 훨씬 간소하고 저렴해진 것은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 1700년경만 해도 귀족을 제외한 중류 이하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오히려 두 배 정도 옷을 많이 갖고 있었고, 그 가치도 여성들이 소장한 옷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런데 18세기 중엽이 되면 모든 계층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의복을 소장하기 시작한다. (“소비의 역사”, 42페이지)

1700년으로부터 18세기 중엽까지, 10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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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좌, 16세기), 루이14세(우, 1701). 여성의 드레스 못지 않게 화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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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미술원 회원들(좌, 1795), 영국 국회의원들(우, 19세기)의 모습. 시대가 지날수록 간결해지는 남성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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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는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가 핵심적인 경제이론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따르면 국가의 부는 그 국가가 쌓아놓은 금과 은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급적 수입은 줄이고 수출은 늘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최대한 많은 재산을 쌓아놓는게 강한 국가가 되는 길이었어요. 당연히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사는 게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졌죠.


이 시기에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왕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시의 상공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중간계층에 의해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영국의 청교도혁명(1640~1660), 명예혁명(1688), 더 나아가서는 프랑스 대혁명(1789)까지 일련의 사회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중간계층들이 보기에 왕족들이 입고 다니던 옷들은 사치스럽고 방탕하며, 외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속물적인 것이었어요. 이에 대한 반발로 중간계층은 어두운 색깔의 검소한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이 검소한 옷이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도덕적 정당성을 얻습니다. 오늘날 서양양복의 형태가 이때부터 잡히기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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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성복도 간소화되었을까요? 아니요, 여성복은 오히려 더 화려해졌어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부르디외(Pierre Bourdieu)라는 사회학자가 말한 ‘구별짓기’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인간은 다른 대상과 구별되는 자기자신을 확립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대상과 구별되어야지만이 나라는 개체성이 확립이 되고, 그래야만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자기존재감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셈이에요. 과거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구별의 부담이 덜했어요. 내가 어떤 신분에 있다는 것으로 이미 나의 삶의 모습이 어느 정도 고정이 되어있으니까요. 내가 가질 수 있는 직업, 내가 입을 수 있는 옷 등이 이미 결정되어있었죠. 그 규범만 따르면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혁명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었죠. 이제 신분적으로 나를 구분해주는 표지가 없어진 거예요. 과거의 귀족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천한 것들하고 내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굉장히 불만이었겠죠. 이렇게 모두가 쉽사리 구분될 수 없는 평등사회에서는 외양적인 것들에 대한 표현이 강조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다 똑같은 교복을 입는 와중에도 자기 몸에 맞게 교복을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처럼 말이죠. 근대사회의 인간들은 ‘고급스럽고 화려한 옷’을 입음으로써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과시하기 시작했어요. 부르디외는 이 구별짓기의 작동방식이 점점 더 발전해서 의복 다음으로는 학력, 문화적 취향으로까지 옮겨가는데, 이를 묶어 ‘문화자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죠? 아까는 남자의 의상이 더 간소해졌다고 했잖아요? 네, 맞아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상은 도덕적으로 나쁜 옷이기 때문에 남자들 본인이 입을 수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구별짓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 남자들은 부인, 딸 혹은 애인에게 값비싼 옷을 입힘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불과 몇 십 년 안 되는 시간동안 남성복과 여성복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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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정장이더라도, 여성복은 남성복에 비해 선택의 폭이 훨씬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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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복의 다양화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당시 유럽의 핵심산업 중 하나가 직물산업이었는데, 18세기에는 이미 직물산업이 충분히 성장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해외무역이 고도로 발전하지는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직물산업이 만들어낸 옷감은 유럽 내에서 소비가 됐어야 했는데, 여성복의 발달로 그 많은 옷감을 소화해낼 수 있었죠.


그렇다면 산업에 기여도 하고, 예쁜 옷도 많이 입을 수 있었으니 여성들은 행복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함께 읽어볼게요.

그런데 이 현상은 남성들이 사회의 악덕이라고 비판하면서 스스로 거리 두기를 했던 사치 관행을 여성들의 몫으로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략) 이런 곳에서 사치는 부패, 무정부 상태, 여성적인 것 혹은 전제정치와 동일시되거나 그러한 것을 동반하는 사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중략) 이런 사회에서 사치의 상징인 호화로운 옷을 입는 여성은 자연히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2등 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비의 역사”, 50페이지)

‘남성은 근면하게 일을 해서 사회에 기여하지만, 여자는 생산에 기여하진 못하면서 사치를 부리기나 한다’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여성이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성적 불평등이 재생산된 것이죠.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사회는 아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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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이 억압되는 모습도 나타났으나, 재밌게도 이러한 성적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시도 또한 자본주의 내에서 잉태되었습니다. 물론 100퍼센트 순수한 도덕적 목적은 아니었지만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재봉틀 회사 싱어(Singer)의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여성들은 생산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오로지 가정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죠. 재봉틀이 발명되었을 때, 처음엔 공장에만 공급이 되었습니다. 재봉틀을 다루는 기술을 남성이 독점하여 가정 내의 여성들이 남성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죠. 재봉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산기술이 수백 년간 여성으로부터 분리되어있었기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도 이 새로운 기계가 어색했습니다. 싱어의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각 가정집에 재봉틀을 하나씩만 팔 수 있어도 어마어마한 시장을 확보하는 거니까요.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싱어는 재봉틀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웁니다. 바로 ‘싱어걸’이라는 마스코트에요. 당시 사회의 보편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영향을 받아 관능적이면서 나른한 느낌이었어요. 다분히 유혹적이죠. 이에 반해 싱어걸은 절제된 세련됨을 보여주는 원피스를 입은, 활동적인 신여성new woman의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남자를 유혹하는 성적 매력을 지님으로써만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꿈’을 판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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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여성의 이미지(좌)와 신여성(우) 이미지의 대립이 뚜렷합니다.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로 격하시킨 것도 자본주의이고, 주체적인 신여성으로 재등장시킨 것도 자본주의입니다. 사실 신기할 건 없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자본주의 발달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는 점은 똑같으니까요. 재밌지 않으신가요?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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