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움으로부터의 탈피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by 그리다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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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좋은 예술작품의 조건 중 하나는 바로 해석이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 다양성이다. 그런 점에서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이미 그 제목에서부터 좋은 예술이다. 쿤데라가 말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일까. 억누르고 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의미일까, 너무나도 가벼워 고통스럽기 때문에 참을 수 없다는 의미일까. 나의 해석은 전자이다. 감추려 해도 결코 감춰지지 않아 결국 드러나야지만이 인간이 해방될 수 있는 그런 가벼움.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너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같아야 한다는 ‘동일성의 폭력’의 무게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가벼움으로 정의한다.


인정하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너와 나는 같지도 않고,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삶의 궤적이 달랐기 때문에 너가 생각하는 A와 내가 생각하는 A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렇기에 결국,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하지만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너도 나와 같기를’ 희망하는 순간 동일성의 폭력이 작동하고 관계는 불행해진다. 대표적으로 사랑을 규정짓는다 가정하자. 누군가의 사랑은 눈을 떴을 때부터 잠에 들 때까지 모든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사랑은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솔직하지 못해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혹은 ‘같아야만 한다’는 환상에 빠져서는 상대방이 생각하는 사랑에 맞춰 자신의 사랑을 위조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하게”(125p) 된다.


쿤데라는 이 동일성의 폭력의 무게를 뚜렷하게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 언행으로 체코 공산정권으로부터 배척당했다. 그 때문에 프랑스로 망명하여서 프랑스어로 저술 활동을 이어갔고, 더 나아가서는 체코어로 된 자신의 이전 작품까지 프랑스어로 직접 번역하여 재출간했다. 그를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추방한 것은 오직 공산주의 사상에 일치하는 생각만 하라는 억압성이었고, 그 뿌리는 단 하나의 정답(이자 무거운 것) 이외에는 모두 박멸해야할 ‘가벼운 것들’로 인식하는 모더니티modernity 정신이었다. 모더니티의 핵심은 ‘정답’이자 ‘합리성’이자 ‘무거움’이다. 정답이지 않은 것, 합리적이지 않은 것, 무겁지 않은 것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정말 세상엔 그토록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가? 데카르트가 부르짖은 근대적 합리성은 그 폭력으로 세계를 질식시켰고,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던 근대물리학은 그 기본 전제에서부터 부정당했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공산주의는 스스로 붕괴했고,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엔 정답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정답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이 아닐까?


정답이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말과 ‘필연성’이라는 단어로 변주된다. 하지만 삶에 그래야만 하는 것이 있는가? 한 인간의 탄생조차 2억 분의 1의 확률에서부터 비롯되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는 것도 수십, 아니 수백개의 우연이 겹쳐져야만 가능하다. 거기에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이 ‘우연히’ 맞춰질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누가 그 관계를 필연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를, 더 나아가서는 삶을 ‘그래야만 한다’는 정답 속에 가두려한다. 그 결과는 “하느님 맙소사,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 했을까!”(479p)라는 뒤늦은 후회다.


규정은 본질적으로 배제를 내재한다. ‘이렇게 해야 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저렇게 하면 안돼’라는 말이 적혀 있다. 정답에 적혀 있는 대로 따르는 것은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 들뢰즈가 얘기한 것처럼 본질은 차이에 의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뉴튼방정식에 따라 무거운 물체는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을 갖는다. 무거움의 중력은 그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억압한다. 자아의 구체화는 이 중력으로부터, 동일성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데서 시작한다.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308p)


그리고 여기서 사랑이 태어난다. 진정한 사랑은,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에야 그가 나에게로 다가온 것처럼” 상대방의 개별성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나·사회의 정답·규정·기대의 틀 안에 상대방을 가두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 과정은 세상에서 가장 지난하기에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우리는 사랑의 문턱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무거움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가벼움이 살아 숨쉬는 세계에 대한 작가의 갈망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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