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이 싫어서' 리뷰
1.
“교수님, 행복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생이 물었어요.
“한 단어라면 희망이지.”
“왜요?”
“금요일 아침과 일요일 저녁, 너라면 언제가 더 행복하겠니?”
2.
요즘은 자주 쓰이지 않지만 1~2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분명히 좋은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을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말이기에, 저는 이 단어를 2010년대 가장 인상깊은 신조어로 꼽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헬‘조선’이지 헬‘한국’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한민국과 조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분제의 유무입니다. 강력한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과 달리 대한민국은 전후의 폐허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나라죠. 아, 정정할게요. ‘있었던 나라였죠’. 요새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더 좋은 직업으로, 직장으로, 삶으로 옮겨갈 수 없다는 사람들의 좌절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어요.
3.
우리가 이야기해볼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作)”의 주인공 ‘계나’는 이런 헬조선을 떠나 이민을 가기로 마음먹습니다. 계나는 자신을 ‘사바나 초원에서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가젤’로 묘사해요.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많든, 일류대학을 나왔든, 외모가 뛰어나든 해야 되는데 자기는 갖고 있는 게 없거든요. H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계속 실패하다가 W종합금융이라는 회사에 취업은 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회사의 부속품이 되어서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상태였거든요. 그러던 어느 눈 오는 겨울날, 추위를 정말 많이 타는 계나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어요. 타이밍을 놓쳐서 러시아워 시간에 맞닥뜨렸는데, 애초에 ‘(비싼) 택시를 탄다’는 선택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 계나는 출근길의 ‘지옥철’을 타고 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완벽하게 끼어서 자기 뒤에 있는 남자의 생식기까지 느껴지던 지하철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아 집에 들어왔지만, 자신을 반기는 건 집안 가득한 한겨울의 냉기와 겨울용 장갑을 끼고 게임을 하는 동생입니다. 어떻게든 버텨내보려던 계나의 인내심이 이 순간 바닥납니다. 계나는 이 절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니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행을 결심합니다. “한국에서는 행복할 자신이 없거든”요. 대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만나온 취업준비 중인 남자친구도, 평생을 함께 살았던 가족도 모두 한국에 둔 채로 그녀는 떠납니다.
4.
하지만 호주라고 해서 별천지의 천국은 아니었죠. 아무런 연고 없이 도착한 호주에서 계나는 차고를 개조한 곳이나, 열명이 한 집에 사는 집에서 거실에 텐트를 펴놓고 잠을 잡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되니까요. 비자를 위해서 학위장사를 하는 대학원에 2천만원 등록금을 냈으니 돈벌이는 아르바이트로 해야 됩니다. 그것도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되는 일은 못하니, 최저임금도 못 받는 샌드위치집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하죠. 이주 초반에 만난 서양인 남자친구는 맨날 ‘넌 머릿결이 왜 이렇게 좋냐’며 자신을 무슨 인형 다루듯이 대하고, 좀 진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하면 그걸 영어로 표현하려니 입이 안 떨어져서 미치겠어요. 굳이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호주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는, 최대한 쉬운 단어로,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하는 친절을 베푸는데, 이게 꼭 자신을 유아 혹은 저능아처럼 다루는 것 같아 자존감에 상처도 입습니다. “야, 나도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 나왔어!”라고 외쳐봐야 알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간단한 사업을 시작했다가 한국이라면 겪지 않았을 문화적인 차이로 빈털터리가 되기도 하고, 수표를 잘못 받아서 위조지폐 제작 혐의로 재판도 받죠. 특히 이때 경찰이 해명은 전혀 듣지도 않고 자신을 범인으로 모는데서 그녀는 외국인으로서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5.
그러던 어느날, 한국에서 사귀었던 남자친구 ‘지명’으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자신은 방송국 기자로 취업하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계나를 잊을 수 없으니 돌아와달라’고요. 영주권을 따기 전에 몇 달 한국에 들어가려 생각하기도 했고, 지명만큼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남자가 없다는 것도 깨달은 계나는 한국에 돌아와 지명과 동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야근을 하느라 저녁에 간단하게 맥주 한잔하며 대화할 시간도 없는 지명과 행복할 자신이 없습니다. 계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주말마다 나들이를 가자고 하고, 쇼핑만 나가면 ‘이거 사줄까? 저거 사줄까?’하며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것을 보면 그와 결혼했을 때 경제적인 걱정은 없어 보이지만, 계나에게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돈은 노후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으면 되고, 평일에는 저녁이 있고 주말엔 데이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삶이 그녀의 행복입니다. 마침내 그녀는 ‘나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평생을 걸어?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라며 결심을 굳히고는 다시 호주로 떠납니다. 도착하여 공항을 나서며, 소설은 끝납니다.
6.
‘이민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한국은 살기 힘든 나라니, 좋은 나라로 이민을 가면 무조건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식의 믿음을 비꼬는 말입니다. 이민을 추천하거나 미화하는 글에는 종종 ‘이민병을 조장한다’는 비판 혹은 비난이 따라붙죠. 아마 “한국이 싫어서’에 대해서도 그런 의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민병에 걸린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라, 이민병이 왜 사회현상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소설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이민은 그 자체로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처음 호주로 떠나는 비행기 속에서 계나는 생리를 겪습니다. 이 상황을 ‘피를 흘리며 국경을 넘는다’고 표현하죠. 이민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이에요. 외국인으로서 외국에 도착한다는 것은 자국민으로서 제공받던 모든 법적인 권리들을 포기하는 것이자 스스로 문맹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민자의 삶은 낯선 것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낯섦은 익숙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것, 고로 예측할 수 없는 것, 따라서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가 언제나 낯선 대상을 경계하고, 가장 익숙한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내가 외국인을 낯설어하는만큼 그들도 나를 낯선 대상으로 인식하여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시간이 지나 환경에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장벽은 결코 완벽히 사라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은 가질 수가 없으니까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나라가 아닌 이상, 이민자는 평생 이방인입니다.
7.
이러한 어려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꿈꾸는 것은 이 나라가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가 없어요.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모국의 익숙함’이라는 대단한 비교우위를 갖고도 매력에서 밀렸다는 의미에요. 기분 나빠야 하는 겁니다. 그럼 이 나라는 대체 무엇에 실패한 것일까요? 계나의 말을 빌려볼게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중략)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중략)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185p)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딱 ‘갑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지위의 우위를 이용하여서 타인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는걸 우린 갑질이라고 하죠. 계나가 호주의 의류매장에서 일을 할 때, 본사의 매니저가 들러서는 ‘컨버스를 신은 너를 보면 손님들이 옷을 살 생각이 들겠니?’라고 면박을 줘요. 계나는 어쩔 줄 몰라했지만, 동료인 엘리는 ‘내가 보기엔 구두를 신은 당신보다 계나가 더 스타일이 좋아보인다’며 받아쳤죠. 계나가 그 당당함에 감탄하며 엘리가 텍사스 출신이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지만, 엘리는 “이건 텍사스식이 아니야. 글로벌 스탠더드야.”(115p)라고 답합니다.
8.
그럼 한국에서의 갑질은 왜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한국사회가 돈의 힘이 강력한 사회여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작품 내에서도 나온 말인데, ‘한국은 돈이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야’라죠. 공감하시나요?
이런 짤까지 있는 거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나 싶어요. 돈이 많으면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다는 거겠죠. 이러한 인식의 밑바탕엔 무의식중에 ‘소비자라면 어느 정도의 갑질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괜히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겠죠.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아하는 점 중에 하나가 바로 ‘밤샘 영업하는 술집이 많다’라는 거예요. 외국의 번화가에 가면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서 놀데가 없는데 한국은 돈만 있으면 놀데가 널려있죠. 어쩌면 이건 노동을 제공하는 공급자의 편의보다 소비자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라는 반증이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진상고객들에게 사이다 같이 대응할 수 없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인 것 아닐까요?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소득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낮은 것도, 서비스업의 가격이 낮은 것도 이처럼 ‘사람값이 싸서’ 그런 것 아닐까요?
‘노동의 거래를 뛰어넘어 그 사람의 인격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근대 사회의 모습 입니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상품화’를 동반하는데, 이는 노동과 인격을 분리하여 거래하는 것을 의미해요.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아닌 노예에게 노동력을 의존했기 때문에, 노동과 인격은 분리될 수가 없었습니다. 노예는 곧 재산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동력의 수요자인 주인에게는 노예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못 도망가게 감시하는 관리비용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는데, 주인 입장에서는 굳이 관리비용이 비싼 노예노동에 의존할 게 아니라 값싼 노동자 계급을 이용하는게 더 경제적이었어요. 노동자는 도망갈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노예처럼 병들어서 죽을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이점이 있죠. 그냥 다른 노동자로 대체하면 되거든요.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예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체적 자유를 보장받을뿐더러, 고용주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고용주와 계약을 맺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를 더 반겼었죠. 이처럼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노사 간의 관계로 대체되며, 이제 노동은 인격과는 분리되어 거래되기 시작합니다. 사용자는 노동과 관련 없는 부분에 대해서 노동자를 강제할 수는 없게 된 거죠. 노예가 아니고 노동자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값을 지불했으니 너의 인격을 모독할 권리까지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점원들에게 물건을 던지고, 고함을 지를 수 있는 거겠죠. 비단 고객-점원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각종 조직 내부에서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단지 이 경우에는 소비라는 구매 행위가 아니라, 조직 내의 지위를 바탕으로 억압한다는 사실만 다릅니다. 뜬금없이 주말에 단체등산을 가자는 부장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9.
이렇게 돈을 필두로 한 각종 계급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인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계급에 있고자 필사적으로 편을 가르고, 차별하고, 싸웁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학벌이죠.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186p)
한국에서는 이 차별의 메커니즘이 기준만 달라져서는 끊임없이 변주됩니다. 때로는 지역으로, 때로는 인종이나 국적으로, 때로는 직업으로 끊임없이 차별을 하죠. 그래서 보편적인 한국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지명이 ‘호주에선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계나의 지적에 “호주에서도 그럴걸. 너도 호주에서 제대로 된 사무직 일은 해 본 적 없잖아. 호주에서도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의사 같은 사람은 정신없이 바쁠걸”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한국인에게는 ‘진짜 직업’이 있고, 그 밑에 다른 직업들이 있으니까요.
10.
그래서 계나는 떠난 것이겠죠. 대단한 스펙을 갖고 있지 않아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찾아서요. 친구들은 이민을 결심한 계나에게 하나같이 ‘멋있다’고 말하지만 본인도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축사 안의 가축이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이 익숙한 불행에 적응해버렸기 때문이죠. 그들은 게임을 바꿀 생각을 하기보다 이 게임 안에서 손톱만큼이라도 더 우위에 서기 위해 노력합니다. 과연 그들의 미래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2018년 1월부터 10월 말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30,284명입니다. ‘강요된 자율적 선택’을 하게 된 그들의 뒷모습에 안타까움과 위로의 시선을 보냅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그들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모국을 만드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갈 자들의 몫일 겁니다. 계나의 말을 인용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1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