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合格)이라는 이름의 폭력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 리뷰

by 그리다 세계여행

* 글의 주요 정보들은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내용이고, 저의 재해석 및 의견이 일부 포함되어있습니다.


1.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본질은 차이로부터 규정된다.” 프랑스 철학자인 들뢰즈가 한 말이죠. 무엇이 어떻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른 것들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한국이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과의 차이가 전제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만의 차이,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작가 장강명은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에서 공채와 등단이라는 소재로 한국사회의 간판문화를 조명합니다.

185718113.jpg


2.

간단하게 작가에 대해 소개를 할게요. 장강명은 동아일보에서 11년 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합니다. 이후에도 다수의 장편소설을 출간하였고, 그중의 세 작품으로는 문학상도 수상하였습니다. 기자출신이라는 특징에 맞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국사회의 문제적 지점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이 장강명 저작의 특징입니다.


3.

먼저 공채 문화에 대해서 얘기해볼게요. 평소처럼 정의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공채란, 공개적인 방식으로 채용공고를 내어 지원서들을 받은 뒤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특정 직군에 필요한 인재를 핀포인트로 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시험을 봐서 선발합니다. 뽑힌 사람이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는 일단 선발되고 나서 결정됩니다. 합격자는 공채 OO기라는 타이틀을 얻고, 비록 당장은 아무런 업무적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 새끼’가 됩니다. 공채는 1957년 삼성물산공사가 최초 실시한 뒤 한국의 표준 채용문화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퀴즈를 내볼게요. 2015년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치른 시험 1~3위가 무엇일까요? 1위는 대학수학능력시험(59만 명), 2위는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19만 명)이고 3위가 10만 명이 응시한 삼성그룹의 직무적성검사 GSAT였습니다. 삼성 하나만 해도 3위인데, 다른 기업들까지 모두 합한다면 2위는 확실하고 어쩌면 수능보다도 많은 사람이 공채에 응시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4.

공채에는 두 가지 재미난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세간의 믿음과 달리 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는 것과, 일본과 한국에밖에 없는 채용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공채시험의 시험문제들을 보면 대부분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이, ‘바늘 한 쌈이 몇 개인가?’, ‘문제의 도형을 잘랐을 때 나올 수 없는 모양은?’ 같은 것들을 물어봅니다. 과연 이런 문제들이 A라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구별시켜줄까요? 거기다 공채에서는 꼭 빠짐없이 어학능력을 묻는데, 국내 영업직 업무를 할 사람이 외국어를 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이와 같은 공채의 특징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과거시험과 그것을 계승한 오늘날의 수능에도 남아 있습니다. 지적 호기심이나 잠재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의 암기력과 논리력만 보는 것이죠. 이런 공채 문화는 서양에는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신기해합니다. 한 외국인 기자는 한국 언론사의 공채시험 얘기를 듣고는, “기자를 어떻게 시험을 쳐서 뽑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하긴, 기자를 뽑으려면 기사를 잘 쓰는 사람을 뽑아야지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을 뽑는 건 이상한 거니까요.


5.

그렇다면 공채는 왜 한국사회의 표준이 되었을까요? 위에는 공채의 부정적인 면들이 제시되었지만 나름의 장점도 있습니다. 공채는 빠른 산업 발전에 맞춰 노동인력을 대량으로 뽑아 배치하는 데는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어차피 대단히 전문적인 업무를 맡길 일은 없었으니 적당한 지적 능력에 성실한 사람만 뽑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공채시험의 문제들은 성실하게 공부하면 ‘정답을 맞출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온 것입니다. 공채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나 ‘이상한 또라이’를 걸러내고 제너럴리스트를 뽑기에는 좋은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또라이들을 걸러 내다보니 틀을 깨고 생각하는 인재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고, 그 단점은 21세기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더 부각된 것입니다. 공채의 한계에 대해서는 뒤에 더 살펴볼게요.


6.

이번엔 문학상을 필두로 한 문학계의 등단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서점 소설코너에 가보시면 표지에 OO문학상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소설들을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문학상의 상금은 적게는 3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설정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상, 특히 장편소설상은 1996년 문학동네작가상과 한겨레문학상이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습니다.

이 둘이 성공하자 고액상금의 문학상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상과 연계된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행복한 제도였거든요. 이들은 크게 출판사, 평론가, 작가, 독자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문학상들은 주로 중소형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만들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종합출판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한국장편소설을 출판해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소형 출판사로는 작가들도 원고를 보내지 않고, 독자들도 책을 잘 찾지 않았어요. 이런 문제를 문학상을 통해서 해결합니다. 상금만 크게 걸어놓으면 응모작들이 들어왔고,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을 달아주면 독자들도 선뜻 읽었습니다. 평론가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심사비도 받고, 출판업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었죠. 작가들은 이전까지 선배들의 추천에 의해서만 책을 낼 수 있었는데, 이젠 작품만 잘 쓰면 바로 책을 낼 수 있으니 만족스러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도 문학상을 반겼는데요, 출판 관계자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는다는 게 출판사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베스트셀러 목록에 어떻게든 올라가는 게 중요해요. 그걸 못하면 명사가 추천을 했거나 상 이름이 하나라도 박혀 있어야 독자들이 책을 들춰 본다고 생각해요. (...) 한국 독자에게는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당위성을 줘야 먹혀요. 그 당위성을 위해 문학상이나 명사의 권위가 필요한 거고요. 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책’ 같은 독서 목록을 받아 왔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르는 것 같아요.”

독자들 입장에서는 문학상은 ‘어떤 책을 읽어야하나’라는 고민을 없애주는 제도였습니다. 책을 사서 몇 시간씩이나 시간을 들여 읽었는데 결국 알맹이 없는 졸작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의 깊은 빡침, 느껴보신 적 없으신가요? 한번 겪고 나면 다른 책을 읽기 전에도 불안감이 들죠. 문학상은 ‘의미없는 책이 아닐까’라는 독자들의 불안을 달래주는 품질인증마크인 셈이고, 수상작을 읽는 건 ‘안전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겹쳐 수많은 문학상이 난립하였고 이는 이후 한국 문단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7.

수상작 타이틀은 소위 등단작가와 미등단작가를 구분하는 표지로 작용합니다. 문학상을 받고 책을 낸 사람들만 등단작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생겨난 것이죠. 그렇다면 미등단작가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요? 작가들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①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

②신문에서 소개를 안 해준다

③정통 문학인사들이 상대해주지 않는다.

④해외 레지던스 참가 기회나 창작기금을 받기 어렵다.

다른 것들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1번과 2번은 특히 문제입니다. 주류 출판사들이 출판문화행사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과 신문에서 소개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마케팅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케팅에서 배제되면 책이 제대로 팔릴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미등단작가의 낮은 인지도와 경제적 어려움을 낳습니다.

이는 베스트셀러만 많이 팔린다는, 한국 출판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A 인터넷서점의 통계를 보면 2010년대에 들어 한국소설 시장에서 TOP10 작품의 매출 비중은 50%에서 60% 초반을 넘나듭니다. 심지어 2013년과 2016년에는 1~3위의 매출이 전체의 40%를 넘었죠. 스타 작가의 신작이 없는 해에는 1위부터 10위까지의 판매 비중이 30%대로 쪼그라듭니다. 상위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문학상 타이틀이라도 붙어있지 않는 한 독자들을 만나기가 너무 힘든 구조에요. 문학상은 처음에는 신진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무대였으나, 지금은 무대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런 빛을 받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죠.


8.

공채와 등단제도의 장점은, 검증된 인재/작품을 선별해내는 최소한의 공신력(公信力)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제도의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혁신적인 대상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작품을 ‘걸러내는’ 것은 결국 기존의 권위입니다.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질서를 통해서 대상을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삼성의 공채면접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경험이 없는 일을 맡게 된다면?”, “대인관계는 어떤가? 친구가 많은 편인가?” 대충 어떻게 대답해야 감점되지 않을지 보이는 질문이지 않나요? 말했듯이 공채는 ‘또라이’들을 걸러내는 제도입니다. 회사문화에 녹아들어 잘 협업하고 처음 맡는 업무도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게 목표죠. 만약 스티브 잡스가 20대에 삼성 공채에 응시했다면 어땠을까요? 성격이 하도 더러워서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도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이 질문들에 솔직하게 대답했을 때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또라이들을 걸러내다가 또라이 같이 보이는 천재들까지 걸러내는 것 아닐까요?

이건 가정일 뿐이었지만 비슷한 일이 출판업계에서 실제로 발생했었습니다.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인 해리포터 시리즈는 출판되기 전까지 무려 열두 곳의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습니다. 편집자들은 해리포터 시리즈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많다. (지금의)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인데, 해리포터는 이에 맞지 않는다.”며 출간을 거절했죠. 그럼 마침내 출간을 결정한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계약을 했을까요? 담당 편집자는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블룸즈버리는 신생 출판사라 아동문학 출판 경험이 거의 없던 곳이었습니다.

성공한 자는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질서를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해당 아이디어가 대중을 대상으로 할 때, ‘전문가들이 성공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백억원의 제작비와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든 할리우드 영화중에서 ‘망작’도 많이 나오는 것처럼요. 대중과는 달리 엘리트들은 자기 상상력 바깥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공채와 등단 제도가 최소한의 공신력 있는 대상을 선별해내는 것은, 엘리트 루트를 벗어난 수많은 가능성들을 질식시켜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실 합격(合格)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폐쇄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단어를 뜯어보면 ‘틀에 어긋남이 없다’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틀에 맞지 않는 것은 잘라내겠다는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그리고 그 틀은 기존의 권위이죠.


b0061465_4961fbbbc5e33.jpg?type=w800 비너스의 탄생(1863), 알렉상드르 카바넬
thumb-814d104677915c3873f2d4cc65894615_1488650780_1715_750x482.png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에두아르 마네

역사적인 사례는 또 있습니다. 바로 19세기의 프랑스 파리 살롱전이죠. 화가들의 꿈의 무대였던 파리 살롱전. 그 절정에 이르렀던 1863년, 심사위원들은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1위로 뽑았습니다. 한편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떨어진 작품들을 전시한 낙선전에 전시되었어요. 이 낙선전에는 마네 말고도 모네, 세잔,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등 거장들의 작품이 함께 걸렸습니다. 한 비평가가 이들의 작품을 보고 “벽지도 이 그림보다는 낫겠다. 이 그림에는 인상만 듬뿍 담겨 있다”고 혹독한 비판을 하였고, 여기서 ‘인상파/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오늘날 인상주의는 현대미술의 철학적 토대라고 불리는 미술사조이죠. 살롱전의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의 전문가적 가치관을 벗어난 작품들의 가치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9.

우리는 여기까지 공채 제도와 등단문화의 문제점들을 알아봤습니다. 사실 ‘권위있는 자의 심사’를 통해서 평가받는다는 발상 자체가 다양한 시도를 가로막습니다. 소설을 쓰고 나서 한번 투고해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투고를 목적으로 소설을 쓰면 ‘심사위원들이 좋아할까’라는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공채 시험도, 대입 면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가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다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저는 ‘출판문화’를 중점으로 살펴보려 해요. 문학상을 위시한 등단문화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당선작들이 신비로운 권위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권위는 온전히 문학관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중이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문학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대중들이 수상작이라고 하면 일단 읽어보는 마케팅 효과 때문이었으니까요.

문제는 이겁니다. 혹시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여태까지 다섯 권을 읽었는데, 정작 읽어보면 그렇게까지 엄청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절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평론가들의 선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제 취향에 맞지 않아서입니다. 설령 대단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관계없는 작품이죠. 물론 저의 경험이 백퍼센트 보편적이진 않겠지만,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어본 사람들의 적지 않은 수가 이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작품의 표지를 넘기게 한 강력한 힘은 바로 ‘OO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입니다. 우리가 간판에 취약한 것은 간판 외에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 정보는 바로 ‘내가 읽었을 때 재밌을지의 여부’이고, 이는 ①작품에 대한 정보와 ②자신의 취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전자와 후자 모두 부족합니다. 책에 대한 정보는 호평일색인 추천사와 신문기사 몇 개가 대부분이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바로 취향의 문제입니다. ‘나는 이런 게 좋아’라는, 자신만의 취향이 명확히 서지 않으면 팔랑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취향을 알려면 최소한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미스테리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난 미스테리는 안 맞더라’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의 독서경험은 학창시절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책 100선’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독서는 읽기의 즐거움이기보다 하기 싫은 공부의 연장이에요. 내 취향을 찾아보기에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환경이죠. 그 결과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2권을 넘지 않는 슬픈 상황입니다. 자신의 취향을 알래야 알 수가 없습니다.


10.

저는 독서의 대중화가 출판계의 간판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대중이 자신의 취향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간판에 휘둘리는 일도 적어질 것이고, 수상작의 신비로운 권위도 약화될 거예요. 각자 자기의 취향대로 책을 고를 수 있다면 다양한 책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대형 베스트셀러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겠죠. 출판생태계 자체가 다양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은 독서모임/팟캐스트/독서 유튜브 등과 같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질수록 더욱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듯 작은 움직임들이 쌓여 일상 곳곳에 지적 대화가 녹아들고,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풍요로운 사회를 꿈꿔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떠나는 자의 행복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