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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Feb 07. 2020

두바이, 자본주의의 맛 (上)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0.

 자, 지금부터 머릿속에 그림을 한번 그려보자.

 먼저 평평한 사막의 평원을 그려라. 그리고 평원의 가운데에다 뾰족한 고층 빌딩을 하나 그리자. 최소 50층 이상, 100층이 넘어도 된다. 그 주변에 20~30층 정도 되는 빌딩을 여러개 그리자. 마지막으로 3층 정도 되는 조그만 건물들을 채워넣어 주자. 짜잔, 완성이다.

 이게 뭐냐고? 석유가 일궈낸 기적, 두바이다.




1.

 두바이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한폭탄 같던 허리는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호텔에 갈까 했는데 허리를 다치기 전에 연락이 닿았던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있다. 환자가 가봐야 불편할테니 호텔에 가겠다고 했는데, 한사코 괜찮다며 연락을 이어가더라. 혹시 환자를 위해서 준비할게 있으면 얘기해달라는 환대에 감동했다. 그래서 호스트를 만나기로 했다. 여행 다니면서 배운게 두가지 있는데, '타인의 호의는 거절하지 말자'랑 '영어 잘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꼭 이것저것 물어보자'다. (유럽이나 미국인이 아닐 경우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든 일이 많다.) 기회는 왔을때 잡는 법이랬다.

두바이 공항. 새벽인데도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호스트에게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공항에서 시간을 보냈다. 택시에 탔다. 평소 같으면 곧 죽어도 버스를 탔겠지만, 작살난 허리를 걸고 도박을 하고 싶진 않다. 두달을 있었던 인도에서의 버릇 때문에 흥정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무색하게도, "얼마에요?"라는 질문에 기사는 "미터, 미터"라고 말하며 미터기를 가리킨다. 아, 여기 인도 아니지. 머쓱하다. 인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깨끗하고 널찍한(!) 택시를 타고 출발한다. 기사는 파키스탄 사람이다. 얘기를 나눠보니 1년에 6개월은 두바이에서 일하고, 6개월은 파키스탄에서 쉰다. 가족은 그립지만 두바이에서 몇달만 일해도 파키스탄에서보다 몇배를 더 버니 만족한단다. 이주노동자의 애환이다.




2.

 택시를 타며 밖을 바라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스카이라인이 이상하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땡볕의 벌판에 난데없이 하늘에서 빌딩을 꽂아넣은 모양새다.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뭐야? 그렇게 도시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금방 또 사막이다. 사막의 신기루가 이런 모습이려나? 프라이팬에 깨넣은 달걀프라이처럼 경계가 뚜렷하다. 도로는 왕복 10차선에 차선도 하나하나 널찍하게 닦여있다. 드라이브하기 최적의 환경이다.

스카이라인 실화냐

 택시는 52km에 4만 5천원이 나왔다. 한국보다도 비싼데, 인도랑 비교하니까 피눈물이 앞을 가린다. 체감상 8~9배다. 난 이렇게 좋은 택시 필요없었는데...ㅠ 짐을 내리고 호스트의 집앞에서 기다렸다. 집앞에 작은 분수가 있는, 척 보기에도 고급 빌라다. 주변에 있는 집들은 다 이렇게 생겼다. 동양인 부랑자가 길바닥에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줄까?"란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몰골인가보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과 바싹 마른 햇볕의 중동

 중동의 바싹 마른 햇살을 받으며 기분좋게 광합성을 했다. 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도 광합성을 한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어디선가 묵직한 엔진소리가 들린다. 폭주족을 연상시키는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낮고 웅장한 소리다.

캬, 두바이라고 첫날부터 슈퍼카를 보는구나.

 차는 포르쉐 스포츠카였다. 근데 전조등이 깨져있다. 나간지 몇주는 돼보인다. 나 같으면 애지중지할 차를 누가 이렇게 모는거야? 그 차가 내앞에 서더니, 키가 185는 돼보이는 거구의 아랍남자가 내린다.

 "Hi, Glenn?" (글렌은 내 영어이름이다.)

 세상에, 차 주인이 내 호스트 아메르(Ammer)였다. 얼떨떨하지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에 들어갔다.

'누가 차를 이렇게 모나' 했는데, 내 호스트네...?




3.

 아메르의 집은 엄청 넓진 않지만 혼자 살기엔 차고 넘치는 복층원룸이다. 완전 신식이다. 들어가면 고양이 두마리가 아빠를 반긴다. 간단하게 집소개를 한 다음 그는 시샤(중동식 물담배)를 만든다. 퇴근을 기념하는 그만의 의식이란다. 집에서 직접 시샤를 만드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는 담뱃잎을 신이 나서 자랑한다. 모든 제품을 다 시험해보며 찾은 최상품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냄새가 좋다. 완성된 시샤를 들고 테라스에 나갔다. 원래 담배도, 시샤도 안 피우는 나지만 호기심에 몇번 빨아봤다. 뭐가 뭔진 몰라도 대충 좋은진 알겠다. 햇볕을 쬐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메르네 고양이. 도도하다고 이름도 퀸(Queen)이다.
시샤장인 아메르
내가 하니까 연기가 별로 안 나오더라. 시샤도 펴본 놈이 잘 핀다.
손님맞이용 대추야자와 커피. 엄청 맛있다. 잔도 내 취향이다.


 두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한 주제는 없다. 한가지 기억에 남는건 두바이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다. 그의 직업은 군인이다. 원래 공군장교였다가 공항관제탑에서 일하던 와중에 대통령호위대(진짜 이름이 presidential guard다)에 스카웃됐다. 아까 봤던 스카이라인 얘기를 하니 그가 받아친다.


 "재밌는게 뭔줄 알아? 30년 전만 해도 두바이는 완전 허허벌판이었어. 구글에 '1990 dubai' 쳐보면 깜짝 놀랄걸? 그런데 지금은 잘 나가는 도시가 됐지. 가끔 서양 나라들이 우리보고 독재왕국이라고 비난하는데 그게 뭐 어때? 우린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거야. 자기들 일이나 신경쓰라 그래."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도시 곳곳에서 건설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후 네시에 퇴근을 하고 휴가도 자유롭게 쓴다는 그에게, 이번 주말에 뭘하고 놀지 말고는 크게 고민이 없어보였다.


30년 전의 두바이와 지금의 두바이. 한강의 기적은 연속 뺨치기 때릴 정도다.




4.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저녁은 그가 한달에 한번씩은 가는 최고의 훠궈집에서 먹기로 했다. 두달째 못가서 눈 앞에 어른거린단다. 전조등이 깨진 그의 포르쉐에 탔다. 이제 보니 문도 세로로 열린다. 이런 차 처음 타본다. 액셀을 밟을때 부드럽게 울리는 엔진소리를 들으니, 이래서 남자들이 자동차에 빠지는구나 싶었다. 스포츠카를 타고 왕복 10차선 도로를 달리니 꼭 레이싱게임 같다. 10차선이니 교통체증도 없다. 앞에는 페라리, 옆에는 마세라티가 달린다. 뭐하는 나라야?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기름이 부족해 주유소에 들렀다. 아랍식 흰 로브를 입은 사람이 아메르에게 차 주인이냐고 묻는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아메르가 날 안심시키고는 내려서 그와 얘기하는데, 표정이 점점 굳는다. 운전자등록증까지 가져간다. 15분쯤 얘기했을까,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차에 탄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설마 전조등 깨져서 그런가?


 "무슨 일이야?"

 "내 차를 압류하겠대."


 이게 무슨 소리야?

 "뭘 잘못했다고?"

 "엔진 불법개조 때문에. 일단 여기서 가져가면 내가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가까운 삼촌 집까지 간 다음에 견인해가라고 했어."

 내가 이날 총 네번을 놀랐다.

 첫번째, 불법개조했다고 차를 압류해가서 놀랐다. 벌금물고 마는게 아니라, 아예 엔진을 정상엔진으로 교체하고 나서야 다시 찾아갈 수 있다.

 두번째, 불법개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과도한 배기가스가 환경에 좋지 않아서'다. 석유로 만들어진 왕국이 배기가스로 사람을 잡는다니, 이게 무슨 넌센스인가.

 세번째.

 "그럼 우린 택시타고 가야겠네. 너 내일 출근하는데 불편하겠다."

 "괜찮아. 삼촌집 가면 다른 차 또 있어."

 .....ㅋ....ㅋㅋ 왜 차는 네가 뺏겼는데 내가 슬프냐. 박탈감든다.

 네번째. 그렇게 삼촌 집에 도착해서 경찰이 차를 견인해갔다. 경찰이랑 마지막으로 얘기를 하던 아메르가 씩씩거리며 돌아온다.

 "무슨 일이야?"

 "말을 재수없게 하잖아. 소중한 차니까 커버 좀 씌워달라고 했더니 "경찰서 주차장에 마세라티랑 람보르기니가 있는데 이게 비싼 차라구요?"라고 비웃네."


 이쯤되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다.




 5.

 아메르의 삼촌네에 들린 김에 집구경을 했다. 집이 궁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정말 궁궐이다. 현관에는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태피스트리(카페트 같은 장식용 직물)가 걸려있다. 집안 곳곳이 아랍 회화, 금속 및 유리공예품으로 장식돼있다. 와인빛 소파엔 척 보기에도 섬세한 자수가 놓여있다. 휘황찬란 하다는걸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내 중동뽕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이런 아랍부자 느낌이 좋아서 그런가보다. 돈 많이 벌어야 되겠다.

가구 전시장 아니고 집이다.


 아메르가 삼촌에게 나를 소개한다. 몇분 뒤에 집안 요리사가 음료를 갖다준다. 유리공예로 만든 잔은 더럽게 무겁다. 연두색 주스라 '...?'하는 표정을 지으니 레모네이드라고 알려준다. 마셨다. 깜짝 놀랐다.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단순히 맛이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 과일의 발랄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설탕이 아니라 과일의 단맛이 살아있다. 내가 평생 먹어본 레모네이드, 아니 음료 중에 제일 맛있다. 미국 속담에 '삶이 네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말이 있다. 좋지 않은 시련도 잘 활용하라는 의미인데, 이런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백만장자 되겠다. 어렸을때 친구네 가서 맛있는거 먹고 오면 그렇게 기억에 잘 남는다는데, 어렸을때 한번도 못 느껴본걸 오늘 처음 느껴봤다. 맘 같아선 물병에 챙겨가고 싶은데 짐짓 아무렇지 않게 쿨한척 했다.


 후회한다. 한잔 더 달라고 할걸.


인생 최고의 음료수가 손님한테 주는 웰컴주스라니




6.

 아쉽게도 여분의 차는 다른 사촌이 사용 중이라 운전할 수 없었다. 시간도 늦어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아메르가 제대로 된 저녁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해한다. 대신 집에 있는 빵, 햄, 치즈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준다. 냉장고에서 꺼내 빵 사이에 끼워만 넣은거라 조리랄 것도 없다. 그런데 맛있다. 재료가 워낙 좋으니까 이렇게만 만들어도 맛있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조리과정의 번거로움을 비싼 재료로 틀어막았다. 오늘 하루만 해도 이렇게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인데, 남은 3일 동안은 어떨까?


 사막의 시원한 바람 속에 맑은 밤이 깊어간다.


재료가 맛있으면 썰어만 놔도 맛있다.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두바이, 자본주의의 맛(하)"이에요.
 "아직 3일 남았다." 신기루 같은 사막의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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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Photo by David Rodrigo on Unsplash

2. 1990년 두바이 : Eugenio Govea on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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