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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Mar 08. 2020

두바이, 자본주의의 맛 (下)

※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7.

세계에서 최악의 성비를 가진 나라가 어딜까?

여성인권이 낮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땡. 정답은 1위가 카타르, 2위가 두바이가 있는 아랍에미리트다.


8.

 아랍에미리트의 정식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합(United Arab Emirates)이다. 에미리트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토후국' 정도로 번역할수 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토후국 여럿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다. 두바이는 이 연합의 회원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성비는 기적에 가까운 2.3이다. 여자 한명당 남자가 두명도 넘게 있는 셈이다. 일처다부제가 아닌 이상 강제로 솔로천국이다. 다행히 이는 자연성비가 아니다. 석유 때문에 돈은 넘쳐나는데 일할 사람은 부족해서 이주노동자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다. 건설노동자, 택시기사, 공학자 등 노동력이 필요한 대부분의 직종에 외국인 남성들이 취업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70년대에 사우디로 오일머니를 벌러 갔던것과 마찬가지다.

극악의 성비를 자랑하는 상위 7개국. 몰디브를 제외하면 모두 중동국가다,




9.

 이 때문에 두바이는 그 자체로 인종전시회다. 지하철을 타려고 잠깐 걷는데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모든 종류의 인종을 다 봤다. 국제도시라고 하면 손에 꼽히는 상하이, 홍콩, 방콕까지 다 가봤지만 이 정돈 아니었다. 아직 안가봤지만 뉴욕보다도 더하지 않을까 싶다. 외국인이 오죽 많으니 사람들만 봐서는 여기가 무슨 나라인지 모를 정도다.


인종이 이토록 다양하다보니 문화도 섞여있다. 아메르가 좋아한다는 훠궈집에 갔다. 세상에, 중국 현지에서 먹었던 맛을 업그레이드했다. 재료의 종류도, 신선함도 훨씬 수준이 높다. 오랜만에 먹는 중식에 정신이 뺏겼는데 이제보니 손님들의 구성도 신기하다. 유럽여자와 온 중국인여자, 혼자 온 중동사람, 중국인 가족, 서양 중년여성들. 다들 여행객이 아니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다. 비단 중국음식 뿐만이 아니다. 사거리 하나에 일본음식점, 레바논음식점, 피자집, 인도 카레집이 손에 손을 잡고 있고 한국음식은 배달까지 해준다. 쌈 싸먹으라고 양상추 두장만 덩그러니 준것만 빼고는 맛도 준수하다.


인생훠궈가 두바이에서라는 아이러니
불고기, 비빔밥, 육개장을 시켰다. 아메르는 김치를 좋아한다며 세통을 더 시켰다.


 이 다양한 문화들의 수준이 하나같이 뛰어나다. 돈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낮문화는 물론 밤문화도 포함이다. 두바이 최고의 비치클럽이라는 제로그래비티에 방문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조명과 인테리어에 눈이 돌아간다. 시샤도, 술도 잘 마시지 않지만 별세계에 온듯한 음악소리에 신이 나서 주는대로 다 빨아먹었다. 여기 아랍국가 맞나? 자리를 옮긴다고 스포츠카를 타고 두바이의 야경을 질주하는데, 취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신났다고 방방 뛴 기억은 있다.


야외오픈 비치클럽, 제로그래비티(Zero Gravity)


 이렇게 신나는 환경 때문인가 두바이 사람들은 친절했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나오지 않나. 돈이 다리미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도와줄까?"라고 묻던 빌라앞 아저씨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던 택시 아저씨도 친절했다. 클럽에 가려고 부른 택시가 펑크가 나자 아메르는 기사를 도와 타이어를 교체했다. 신경쓰고 나온 복장으로 기름때를 묻히던 그가 내게 말했다.


 "택시기사들은 시간이 돈이잖아. 혼자하면 오래 걸릴테니 얼른 도와서 끝내야지." 


'이미 늦었는데 얼른 다른 택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스스로가 민망했다.




10.

 그렇다고 두바이가 모든 인종이 화합하며 살아가는 별천지는 아니다. 계급구분은 뚜렷하고, 계급이 인종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더 불편하다. 쇼핑몰에 들어가면 아랍인과 유럽-북미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진다. 쇼핑을 할만한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소비할 서비스를 공급하는건 이주노동자다. 두바이의 랜드마크, 부르즈 칼리파에서 유니폼 차림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길래 말을 걸었다.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다. 청소일을 하는 사람인데 10시간 근무를 하고는 녹초가 됐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감정적으로도 힘들지만, 이것만큼 돈을 주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는 묵묵히 출근한다. 통근열차에 오르는 그의 어깨에 매달린 가방이 유독 무거워보이는 기분탓일까.


두바이몰 내부. 대형 곡면 스크린 수백개를 이어붙였다.
초대형 아쿠아리움도 들어가있다.




11.

 그렇게 짧은 두바이 여행을 마쳤다. 다친 허리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서 있느라 못해본게 너무 많다. 오기 전까진 기대를 안해서 체류기간을 짧게 잡은게 아쉽다. 다음엔 꼭 '돈을 다발로 들고와서' 풀코스 자본주의를 맛봐야겠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바이를 사랑하는건가? 재밌었고 꼭 다시 오고 싶은 도시는 맞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정이 들었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무슨 차이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나의 이론이 떠올랐다.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의 글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기 쉬워 공포감을 느끼니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역사가 수천 년인 유럽의 도시들은 도로망이 거미줄 같지만, 많은 랜드마크와 조각상, 분수들이 포진해 있어 도시 전체의 이미지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풍성한 이미지와 햇살, 푸른 하늘은 길을 잃는 공포심을 대체해준다. 


 대상을 이해한다는건 내가 주체가 되는 순간에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난 두바이에서 주체가 될수 없었다. 내가 느낀 두바이는 모든 것이 돈있는 자들의 스펙터클로만 보이는 곳이었다. 소비자가 아닌 인간은 취급하지 않으며, 소비자도 두둑하던 지갑을 다 털고나면 나가야되는 디즈니랜드 같은곳. "소비의 순간인 비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인간은 고통스러운 노동의 일상을 보낸다"는 네덜란드 철학자 호이징가의 말이 찰떡같이 이해된다. 나도 이 환상 같은 비일상으로의 초대권을 받기 위해 '돈을 다발로 들고 와야겠다'고 느낀것 아닐까?


부르즈 할리파 옆으로 여러 채의 고층빌딩이 또 올라가고 있다.


12.

 영화 '기생충'의 관람후기엔 유독 이런 반응이 많았다. '정말 대단한 영화인건 알겠는데, 너무 찝찝해서 다시 보기가 겁난다.' 등장인물 누구에게 몰입하느냐, 즉 누구의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관점은 바뀐다. '기생충'을 보고 아무렇지 않던 나에게 두바이가 다가왔다. 부르즈 칼리파 옆에 수백미터 고층빌딩 다섯채가 들어서는 모습,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보면 그 신세계에 눈이 돌아간다.


 하지만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게 자본주의의 맛이다.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제가 이슬람은 처음이라서요"에요.
 무슬림에게 소개받은 이슬람과의 첫만남은 어땠을까요?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Photo by ZQ Lee on Unsplash

2. 성비 통계 : UN World Population Prospects 2019 & World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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