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도대체 철학공부해서 얻다 써요?

'굶어죽기 좋은 학문'을 위한 변명

by 그리다 세계여행

1.


안녕하세요? 그리다에요.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제목 그대로, “그래서, 대체 철학공부해서 얻다 써요?”라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죠. 참고로 저는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대단한 지식인도 아니기 때문에 제 말에는 어떠한 학술적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2.


앞서 말했듯이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철학을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던 사람이 아니에요. 전공자처럼 공부를 하고 논문을 써야지만 학위를 받을 수 있던 것도 아니고, 직업인처럼 공부를 해야지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철학을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하고자 해요. 철학공부가 제가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됨을 느꼈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니체와 푸코인데, 이들의 이론을 배우고 나니 제 삶과 세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던 그 순간의 희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으니 좀 더 설명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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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좌)와 푸코(우). 이들의 이론을 공부하며 저의 세계관의 뼈대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3.


흔히 어떤 사람을 ‘철학자’라고 부를 때에는 크게 두 가지의 범주가 있어요.


1. 철학사(史)적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

2. 자신만의 독자적 철학이론을 구축한 사람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게 어떤 배경에서 나온 어떤 의미의 말인데 블라블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1번, ‘내가 보기에 세계는 에피스테메의 발현이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2번인 것이죠. 그런데 1도 궁극적으로는 2를 지향합니다. 옛사람들이 했던 말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그 말이 맞다고 가정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틀린 점이 있다면 반박하며 보완해나가기 위함이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이론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인슈타인이 고전역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상대성이론을 낼 수 있던 것처럼 말이에요. ‘독자적 철학이론’이라고 하면 엄청 커다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세계관’이라는 일상용어로 풀어도 무방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철학자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나온 답을 배우는 건 쉽지만, 배운 걸 뒤집어서 새로운 답을 생각하는 건 굉장히 어렵고 불편한 사고방식이거든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철학의 주요 분과 중의 하나가 바로 ‘가치론’입니다. 가치론의 주요 질문 중 하나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죠? 보통 사람들은 “값지면 값진 거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라고 답할 거예요. 아마 친구들한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뭘 복잡하게 생각하냐”라고 욕을 먹겠죠. “값지면 값진 거지”라는 말은 가치에 대한 세상의 통념으로, 우리가 무의식중에 공유 또는 학습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괜히 머리 아플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지 뒤집어 생각합니다.


그렇게 머리 아프게 생각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뭐냐고요? 바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또 예를 들어볼게요. 가치론의 영역에는 윤리학이 포함되어있는데, 윤리학은 인간의 도덕감정을 다루는 분야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옳고 그르다고 느끼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죠. 우리는 성(性)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쑥스러워 합니다. 요즘엔 많이 개방되었지만 여전히 성에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은 매우 사적인 일이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부적절하다고까지 여겨지죠. 우리는 왜 성을 금기시하게 되었을까요? ‘오래 전부터 그래왔으니까’라는 대답이 아마 쉽고 편한 답이겠죠. 하지만 이렇게만 생각해서는 아무 것도 달라질게 없습니다. 어제와 같이 오늘을 살고, 내일은 오늘과 같을 터이니 결국 매일이 똑같은 모습일 겁니다. 우리의 삶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과 같은 쪽으로만 향할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 ‘왜 예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까?’라고 의문을 품고 연구를 한다면 무엇인가 다른 결론이 나오겠죠. 푸코의 결론은 ‘성은 국가의 핵심자원인 인구를 재생산하는 가장 중심적인 수단이기에, 인구를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한 성적 담론이 필요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아, 성적인 얘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겠죠. 그러고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정할 것입니다. 그게 이전과 같은 것이든 다른 것이든 말이죠.


4.


이처럼 철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력으로 자기만의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과정입니다. 꾸준히 ‘왜’라는 질문을 던져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려는 시도죠. 이 과정에서 철학적 지식은 세계관 자체를 제공해주진 않지만 자기만의 시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들을 제공해줍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은 대개의 경우 ‘맞다 혹은 틀리다’라는 증명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비단 철학뿐만이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해당되는 내용이에요. 요즘처럼 과학적인 것이 진리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이는 약점으로 여겨지지만, 저는 이 점이야말로 오늘날 인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4차산업혁명의 흐름에 따라 가장 각광받는 능력이 무엇이죠? 바로 상상력이죠. 상상력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는 데서 나옵니다. 어디서 비슷한 얘기를 듣지 않으셨나요?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생각하지 않는’ 철학적 태도와 유사하지 않은가요? 만약 정답이 있는 학문이라면 모든 사람들은 그 정답을 찾는 데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정답이 아닌 것들은 금방 폐기처분되겠죠. 하지만 애초에 정답이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온갖 새로운 생각들을 시도해볼 것이고, 그 중에서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것입니다. 평소에 이런 종류의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가 않겠죠? 그래서 저는 인문학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사고방식을 배우는데 적합한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5.

content_1424832093.png 한국이 인문학을 이렇게 사랑하는 나라인 줄은 몰랐습니다.

2010년대 중반,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한편 전국적으로는 인문학 열풍이 부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무슨무슨 인문학’ 같은 제목의 책들이 수없이 출판되었고, 방송과 강연시장에서도 갖가지 콘텐츠들이 개발되던 시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절정의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그 트렌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인문학이 ‘굶어죽기 좋은 공부’ 정도의 취급을 받던 시기와 비교하면 분명한 발전이지만, ‘그래서 대체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채로’ 죽은 학자들의 말을 외우고 있어봐야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럴 경우 그저 ‘지적 쇼핑의 대상’, ‘악세사리로서의 지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거든요. 자신의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 시선을 차용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여전히 ‘돈 안 되는 공부’일 것입니다.


철학이, 인문학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본인만의 세계관이 서있지 않다면 아마 자신의 세계는 세계가 흘러가는 대로 구성이 될 거예요. 저는 제가 인식하는 세계를 제 판단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에 철학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 필요한 사고방식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철학의 쓸모입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여정을 함께하신다면 행복할 것 같네요.

이상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들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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