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계속하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니까.

by 욕심많은 둘둘

'차에 살짝 치였으면 좋겠다.'

'지금 내려가는 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 어떨까'


반복되는 출근길, 매일같이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이었다. 실적은 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행사 영업사원의 실적은 '판매'로 평가받지만, 판매 이후에 더 많은 과정이 이뤄진다. 모든 고객을 1:1 맞춤으로 여행을 컨설팅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약을 완료한 이후에도 상품 구성을 변경하기 원하는 경우에는 상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혹시나 취소할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취소 페널티를 설명하면 또 컴플레인하겠지. 생각보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취소 페널티에 굉장히 인색했다.


여행을 출발한 이후에 일어나는 이벤트도 다양했다. 픽업 차량이 늦거나 서로 엇갈리는 경우, 비행기가 크게 지연되는 경우, 호텔 예약이 누락되는 경우, 출발 당일 고객의 여권 유효기간이 만료되거나 훼손되거나 잃어버린 경우(생각보다 많다.), 태풍이 오는 경우,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 등등등등...


모두 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벤트들은 '시간 상관없이' 일어난다.


추석 명절이 시작되는 날 아침 6시 30분, 뜬금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으니 공항에서 여권이 훼손되었다는 걸 알게 된 고객의 전화. 나는 바로 긴급 여권 발급 방법을 안내한 후, 고객의 여권 발급 경과를 확인하며 기존 항공권 취소 및 새로운 항공권 발권 과정을 케어해야 했다. 이 과정으로 연휴 첫날의 반을 소모해야 했다.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크리스마스 기념 1박 2일 여행에서는, 짙은 미세먼지 안개로 심하게 지연된 항공기 이슈에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는 고객과 새벽까지 통화를 이어나가야 했다.


지금의 시부모님을 처음 뵙는 식사 자리에서도 어떤 고객의 여행 이슈를 해결하느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여행 중 어쩌다 한 번씩 경험하는 이벤트들이 수많은 여행을 관리하는 나에게는 정말 빈번하게 일어났고, 실적이 높아질수록 이런 이벤트가 일어날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


내가 맡은 일에 진심이 되는, 몰두하는 나의 책임감은 이럴 때는 독이되었던 것 같기도 한다. 일에서 발생한 문제와 나의 일상을 전혀 분리하지 못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나를 점점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핸드폰의 잠금화면을 풀 때면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와있을까 봐, 고객의 카톡이 와있을까 봐 매번 불안했다. 어떤 이벤트가 하루 안에 해결되지 않을 때면, 그날 밤 내내 나의 꿈은 문제를 해결되는 꿈과 해결되지 않는 꿈의 반복이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결국 신체적인 증상으로 이어졌다. 급성 신우신염. 지금 보면 조금은 어리석은 책임감에 오전부터 지속된 통증에도 참고 일을 하다가 퇴근길에 그대로 응급실로 향하게 됐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아 몇 달 뒤 다시 병원으로 향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영업했고, 공부했고, 고객의 여행을 관리했다. 시간이 갈수록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벤트들에 좀 더 무던하고 조금 더 빠르게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입사 시 목표했던 만 2년이 지나갔다. 나는 계속 잘하는 직원이었다. 승진도 했다. 그러나 결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2019년 4월, 성수기가 지나고 회사와 퇴사 시점을 논의 후 2년 5개월의 첫 번째 직업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의 첫 번째 진짜 퇴사였다. 정말 최선을 다했던 나의 첫번째 직업이었다. 지금 떠올려도 힘들었다. 기억은 많이 미화된다고 하는데, 당시 느꼈던 힘들었던 감정은 그대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힘들었음에도, 최선을 다했던 첫번째 직업은 결국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콜포비아(Call Phobia)라는 두려움을 극복하여 영업왕이 된 과정, 여러가지 문제 상황을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 직접 경험하고 쌓은 또다른 나만의 역량이었다.


다음 여정으로 향하기 전에 다음 글에서는 여행사 근무 당시에 발생했던 문제 상황들을 어떻게 대응했었는지 몇가지만 적어봐야겠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대응도 함께 말이다. 당시의 과정을 정리해보는 것이 지금의 커리어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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