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참 많이 발생했다. 자연재해나 고객의 실수, 항공사 이슈 등 내가 어떻게 해도 통제할 수 없는 문제도 있지만, 픽업 지연이나 현지 가이드의 미숙함 등 현지 업체와 관련된 문제(고객 입장에서 봤을 때 어쨌든 '여행사'의 과실)도 많았다. 그런데 그 문제들을 대응했을 때 심각한 컴플레인으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감사 인사로 마무리된 경우가 더 많았다.
당시에는 사실 내가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문제 상황을 대응할 때마다 상황에 맞춘 차별화 전략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서비스업을 진짜 '업'으로 삼아 종사한 지 10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당시의 상황들을 회고해 보면 지금의 나에게도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1. 나의 첫 번째 예약 건이었다. 3대가 함께 베트남으로 떠난 가족 여행이었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할 시간 즈음 비상연락망으로 카카오 보이스톡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행사에서 보이스톡 벨소리는 모두에게 공포의 소리다.) 불안한 마음으로 받으니, 공항에 도착했는데 픽업 기사를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의 과실이다. 바로 현지 사무소와 연락하여, 차량에 탑승할 수 있게 하였지만 이미 30분 이상 딜레이가 생겼다. 그때부터 고객에게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였고, 여행 기간 내내 불편함은 없는지 확인하였으며 현지 사무소에도 세심한 케어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 고객님께서는 개인적인 감사 인사는 물론,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칭찬 글'을 남겨주셨다.
#2. 70대 노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가족 여행이었다. 현지 개별 가이드를 동행하는 여행이었는데, 그 가이드가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하지 않아 연락을 받게 된 케이스였다. (가족이나 단체 여행을 떠나는 고객분들께는 의무는 아니었지만 그냥 내 개인 연락처를 안내드렸었다.) 이 또한 당연히 우리의 과실이었다. 그때는 연휴 기간으로 가이드를 당장 바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과와 현지 사무소와 지속적으로 연락해서 일정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 밖에 없었다. 연휴 기간이었다는 것은 나도 쉬는 날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고객과 연락하며 이야기를 듣고 나의 최선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도 고객님께서 '칭찬 글'을 남겨주셨다.
#3. 이번에도 3대가 함께 태국으로 떠난 가족여행이었다. (이제 보니 가족 단위 여행 예약을 정말 많이 받았다ㅎㅎ) 호텔에 도착해 보니 예약한 룸타입이 아닌, 한 단계 낮은 룸타입으로 배정을 받게 된 것이다. 예약 후 확인까지 모두 마친 건이었는데 호텔의 오버부킹 실수였다. 연락을 받은 후 바로 호텔과 확인을 했지만, 체크인 당일에 원래 예약한 룸은 모두 만실이었어서 1박은 낮은 룸타입에서 보낸 후 다음날 방을 옮겨야 했다. 호텔과 계속해서 연락하여 마지막 날 레이트 체크아웃을 제공해 드리는 조건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나는 대가족 인원이 방을 옮겨야 하는 수고에 대한 불만을 듣고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고객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또 듣고 공감했다. 그리고 체크인 시점, 방을 옮긴 시점, 체크아웃하는 시점마다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이 고객님께서는 다음 휴가 시즌이 됐을 때 새로운 여행 예약을 위해 다시 나를 찾으셨다.
예민해지기 쉬운 낯선 타국에서 비용까지 지불하고 믿고 맡긴 여행사의 실수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면 화를 참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던 방법은 베테랑의 노하우도, 비용을 추가로 지불한 대가도 아닌 그저 '진심'이었던 것 같다.
낯선 곳에 도착했는데 예정된 픽업 기사가 오지 않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지 그 감정을 공감하는 진심
최대한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진심
고객들이 나머지 일정은 정말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했으면 하는 진심
내 여행을 누군가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진심
진심으로 고객을 대했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 상황이 있었음에도 심한 클레임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때로는 더 큰 감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문제 상황을 마주할 때면 처리 방법이 빠르게 떠오르지 않아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다른 일들의 처리는 지연되기도 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울상이 되어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이 가기도 하는 등 일처리의 노련함은 매우 부족했다. 매우. 그러나 그 진심은 진심이었다.
서비스업 10년 차, IT 서비스 고객 경험팀 팀장인 나의 지금은 어떨까?
새롭게 마주하는 문제 상황들 속에서 정말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고 있을까? 빠른 문제 해결에만 더 집중하고 있지는 않을까? 문제 상황에 고객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정말 진심으로 생각했을까?
진심 어린 대응으로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받던 약 10면전 사회 초년생의 진심을 떠올려보면 좋을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