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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블루 Nov 08. 2023

26살, 겨울의 시작점에서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


100세 시대라고 말하던 시기가 지나 이제는 150세 시대가 오고 있다더라.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 65세는 아직도 한창 활동할 수 있는 정정한 나이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해도 그다지 신기하게 보이지 않을 사회가 되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을까? 다들 평생직장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왜 아직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헤매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 안에서 함께 휩쓸리고 있는 것인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곳에서 점장님이 갑작스러운 내용을 통보하셨다.


“본사에서 이 매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니 다음 달에 계약이 만료되면 재계약은 진행하지 않는 걸로 해요.”


점장님도 그날 통보받게 되어 무척 당황스럽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새로운 직원이 출근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전달을 해줬다면 새로운 직원은 뽑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어느 회사를 가도 일처리는 항상 이런 식이다.


사실 내년에 폐업을 할 것 같다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말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그저 매장을 관리하는 본사 직원인 점장에게도 당일 통보하는 회사의 일하는 방식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당장 오늘 일어날 일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데 나는 왜 10년 후의 먼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서 직업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럴 때면 항상 엄마에게 한 소리 들으면서도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내일 사고 나서 죽을지 누가 알아. “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고 다녔으면서 행동은 정반대로 하고 살았다니. 사람은 모순적이라지만 너무 대놓고 모순적인 나의 모습을 깨닫게 되니까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이 오랜 기간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적혀있던 해외생활을 시작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타이밍에 다른 것도 아니고 굳이, 콕 집어서 저 단어가 떠올랐다는 것은 바로 지금이 내 인생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될 시기라는 것 아닐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르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아무것이나 붙잡고 가만히 떠있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내 몸을 맡기려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넓고도 깊으며 150세까지 살게 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알고 죽지 못하겠지.


셀 수 없이 많은 길이 있다면 내가 흘러가는 모든 곳들도 다 길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살아가는 인생에 어떻게 다 원인과 결과를 붙일 것인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모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나 자신이 굳건하게 버틸 힘만 있다면 그곳에서 발견할 나만의 길을 발견하여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퇴사하고 방황하기 시작한 시기는 눈이 펑펑 내리고 칼바람이 불던 한겨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첫걸음을 내디딘 나는 현재 겨울의 시작점에 서있다.


도전은 항상 해왔던 일이지만 지금처럼 설렘을 갖고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닌 몇 개월 후에 조금이라도 발전해 있을 내 모습이 기다려지는 건 처음이었다. 사람은 저마다의 길이 있다던데 내 길을 알맞게 찾은 걸까? 아니면 나에게 맞지 않는 길이더라도 작은 돌부리는 치우고, 뒤집어진 보도블록은 새로 깔며 맞춰갈 길이 될 것인가.


살면서 일 년을 채운 직장도 퇴직금을 받은 직장도 모든 게 처음이었던 곳을 떠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열심히 세운 계획이 있었고, 이뤄나갈 자신이 있었다.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위해 시간제 대학에 지원하였고 첫 수업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것 같다. 아마도.


수강신청 해놓은 강의를 한 개씩 들을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였다. 잠깐 경험해 보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공부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고, 수업에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보다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선택한 결과에 대한 답안을 미리 보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끈질기고 끈기 있고 포기를 모르는 독종이었다면 맞지 않다고 느꼈더라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멈추기에는 늦었을 때까지 갔을지도 모를 테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치관이 바뀐 현재의 나라면 늦은 때라는 건 없다며 그만두고 다른 일을 또 찾아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변화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계기는 흔들리던 2년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형성된 모습이라 앞자리가 바뀐 30대에는 지금보다 더 길게 흔들렸을지도.


길게 끌 것도 없이 신청했던 모든 강의를 환불받자마자 한 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 본 적 없던 직업검사, 성향검사, 성격검사를 종류 별로 다 해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을 한 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검사를 할수록 모순된 나의 결과에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고, 좋아하는 것을 적어보고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나열해 봐도 이것들을 어떻게 직업과 연관시켜야 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 한동안 우울함과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년이었다.


급한 마음에 몇십만 원을 땅에 버려보기도 하고, 엄마라면 나를 잘 알겠지 싶어서 추천해 준 직업과 관련된 공부를 배워보기 위해 국비지원 학원을 다니다가 중도포기하여 환불을 받기도 했다.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해 보고, 맛보기라도 경험해 보고, 아르바이트도 계속하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된 점이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


2년 동안 시도했던 모든 공부들은 현재 유망한 직종, 앞으로 더 발전할 분야, 해외취업에 유리한 직무 등 나에 맞춰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맞춰 선택한 결과였다. 내가 한 행동을 알아차리고 잠시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시간 동안  한 가지씩 나에 대해 적어보니 수많은 길 중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적었던 내용 중에 비슷하게 중복되는 것이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시끄러운 환경은 싫어하지만 액티비티 한 활동은 좋아한다. 계획 속의 자유를 좋아한다. 몇 가지 문장들을 보면서 과감하게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 되기를 포기할 수 있었다. 정말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해주고 싶다.


해외 생활을 준비하다 보니 프리랜서로 활동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게 힘들 텐데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해?라는 인식이 무의식에 박혀 내 길을 스스로 좁혀버린 것이다.


이렇게 소속된 직장인 신분을 버렸더라도 모든 일이 소속 없이 일할 수 있진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혼자 업무 진행을 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으면서 내가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에 대해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단계에서도 몇 번 넘어지고 포기하는 과정을 지나왔다. 이 과정 끝에 나는 한 가지의 길이 아닌 여러 가지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중구난방으로 선택하진 않았지만 한 분야에 집중해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여러 가지를 하냐고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배우고 싶은 줏대 없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지 싶은 후회를 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거야! 마인드로 go를 외치고야 만다.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하지 않나.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이루는 전부가 될 것이다. 요즘 이 말을 좋아한다. ‘버티다 보니까 내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재능이 중요할지라도 나중에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전공할 때 ‘연습만이 살길이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쩌면 타고난 재능으로 해야 할 음악을 평범한 내가 시작했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계속하려면 연습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지금은 다른 길로 왔지만 그때 새벽까지 연습해 보고, 여가 시간도 포기하면서 ’나 같은 사람도 연습만 하면 되긴 하네 ‘를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재능이 없음에 좌절하기보다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연습하고 노력하며 버티다 보면 제일 잘하는 사람은 내가 되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게 평범한 사람인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나는 굳건히 버틸 힘의 지지대를 세우고 26살, 겨울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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