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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블루 Jun 19. 2024

나도 부고장을 받을 나이가 됐다

월요일에 처음으로 혼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정말 친한 친구이고 어쩌면 평생 알고 싶은 친구여서 가지 않고 부조금만 보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님과 늦은 저녁 외식을 하던 도중 전화가 와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만 하고 울기만 하다가 갑자기 뚝 끊어버렸다.


다시 추스르고 연락이 된 뒤에 다른 친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달해주고 언제 가야할지 의논을 하다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다. 다들 일을 하고 있어서 퇴근 후에 간다고 했는데 나는 자차가 없고, 출근도 18시라 오전에 다녀오는 게 오히려 더 편해서 결국 혼자 가게 되었다.


옷장을 뒤적거리는데 나름 많다고 생각했던 검정 옷이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말이 떠올랐다. '30대가 되면 결혼식, 장례식에 입고 갈 교복 같은 옷 하나는 장만해 두는 게 좋다' 처음 이 말을 봤을 때는 그냥 있는 옷 중에 깔끔하고 차분한거 입으면 되지 않나,, 했지만 막상 급하게 가야할 상황에 처하자 왜 필요할 수 밖에 없는지 알고 싶지 않게도 경험으로 알아버렸다.



*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새벽에 갈 생각이었던지라 아빠가 데려다 준다고 했고, 부모님께도 말은 해둬야 하기 때문에 했는데 아빠는 "아직 장례식에 갈 나이는 아닌데…" 하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변에도 그렇고 건너건너로도 그렇고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은 보통 병에 걸리신 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아직 내 주변의 어른들은 건강을 걱정할 만한 상태를 가진 분이 아무도 없었다.


특히 요즘 같이 70대에도 정정한 분들이 많은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친구에게 들어온 여러 사정이나 상황을 알기 때문에 갑작스럽긴 해도 충격을 받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 보듯 넘길 수 없어서 소식을 전해듣고 이틀 정도는 심란할 수 밖에 없었다.




*



오랜만에 친구와 보는 장소가 장례식장이고 계속 울어서 눈가가 발개진 얼굴이라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털어내려고 하는 친구를 계속 위로만 하는 건 내가 할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자친구보다 나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다는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친구가 다시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처럼 묵묵히 옆에 있어주며 가끔 같이 욕도 하고, 웃기도 하는 그런 친구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와 결이 비슷하며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깊은 사람 몇 명만 있어도 충분히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왔다. 결혼도 할 생각이 없고 만약 하게 되더라도 항상 "엄마아빠 지인만 넘치는 거 진짜 싫어. 직계 가족만 부를거야, 친척도 안 불러" 라고 항상 말할 정도로 보여주기식을 싫어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결혼식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두분이 결혼을 하기 때문에 갔지 그 외에는 나와의 관계에 따라 축의금만 보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은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웬만하면 가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왔고, 특히 가까운 지인이라면 더더욱 '가지 않는다'는 아예 선택지에 넣지도 않았다.


근데 엄마는 내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니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신지 갑자기 이렇게 물어오셨다.


"너 이번 일로 느끼는 거 없어?"

"뭘? 엄마아빠도 죽을 수 있다는 거?"

"그래"


"죽을 수 있다는 건 항상 알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엄마아빠 죽으면 친구들이 올텐데 친한사람이 이렇게 없으면…"


엄마는 내가 만나는 사람만 만나서 인간 관계가 좁으면 장례식을 했을 때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 줄 사람도 없을까 그게 걱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어봤다. "그럼 100명을 알면 그 사람들이 다 와? 아니면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주기라도 해?"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얉은 관계에서도 충분히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 있고 믿었던 사람은 오지 않는 반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일일히 생각하며 고작 장례식 하나 때문에(물론 정말 하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나의 인맥을 넓혀야 한다는 게 글쎄…


애초에 나는 나를 잘 안다. 연락도 잘 하지 않는 타입이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쓰는 돈도 쓸데없는 항목에는 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말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웃음이 많은 편도 아니다. (당연히 사회생활로 입만 웃을 수 있긴 하지만)


숨 막히는 침묵 상황에서 밥을 먹고 싶지도 않고, 기력을 뺏기고 싶지도 않으며,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고 싶지도 않다.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사회성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어질 인연은 어떻게 하더라도 이어진다고 믿는 편이고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굳이 끊어지는 인연에 매달리고 싶지 않으며 새로운 인연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도 상대방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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