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에서 4월 초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내는 깽깽이풀은 연보랏빛 꽃잎이 아름다운 우리 자생식물이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깽깽이풀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영명은 Asian twinleaf인데, 쌍둥이같이 똑같은 모양의 잎이 마주 붙어 나오는 데서 온 이름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Moore로 Jeffersonia 속에는 단지 두 개의 종만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깽깽이풀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자생하고 있고, 나머지 한 종은 북아메리카에 자생하는 디필라깽깽이풀 Jeffersonia diphylla (L.) Pers.이다.
우리 깽깽이풀은 꽃받침이 3개, 꽃잎이 6개로 나뉘고 열매가 대각선 방향으로 길쭉하게 쪼개어지는 반면, 디필라깽깽이풀은 꽃받침이 4개, 꽃잎이 8개로 나뉘고 열매도 뚜껑이 열리듯 가로로 벌어진다. 잎 모양도 우리 깽깽이풀은 연잎 모양으로 둥그렇게 절반이 펼쳐지는 반면, 디필라깽깽이풀은 가운데가 깊게 갈라진 나비모양으로 두 장의 잎처럼 보인다.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자생하는 2종의 깽깽이풀을 같은 속으로 분류할 것인가를 두고 꽤나 오랜 기간 이견이 있어왔는데, 현재까지는 같은 속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모양이다.
식물그림을 그리다 보면 대상이 되는 식물의 학명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품으로 그리고 싶은 식물을 발견하고도 정확한 동정이 불가능한 경우 작품 진행을 망설이게 된다.
심미적인 접근방식의 보타니컬아트는 식물 분류와 정보기록을 위한 식물세밀화와 궁극적인 목적을 달리한다 할 수 있지만, 둘 다 과학적 정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마주한 식물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종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깽깽이풀의 경우 학명을 찾아보니 엄청나게 긴 명명자 이름이 붙어있었는데, 다행히도 국립생물자원관 https://species.nibr.go.kr 사이트에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정리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깽깽이풀의 속 분류는 1859년 최초로 구분된 이후 변경되었고, 불확실하거나 의문스럽다는 뜻의 dubia라는 종소명처럼 아직도 일종의 모호함을 안고 있는 상태인 듯하다.
학명에서도 드러나듯이 과거의 판단은 수정되어 왔고, 향후 다시 변경될지도 모르지만 이를 기록하고 명시한 사람의 이름은 남는다.
1859년 Maximowicz가 처음 꽃이 아닌 열매 상태의 깽깽이풀을 발견하고 Plagiorhegma속으로 분류하였지만 최근 분자생물학적 접근으로 Plagiorhegma와 Jeffersonia속이 근연 분류군으로 지지되고 있어 현재는 Jeffersonia속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금 내 눈앞의 깽깽이풀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이를 연구하고 분류하는 우리의 기준이 변경되었을 뿐이다.
명명자의 이름이 줄줄이 붙어 있는 학명을 보니, 얼마 전 읽은 룰루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열정적으로 어류를 채집하고 명명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던 저명한 학자의 모습 뒤로, 마주한 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지만,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연구하고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연구자들에게 의미 있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분류학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범주’라는 것이 얼마나 경계가 모호한 것인지, 절대적이고 불변한 경계는 없다는 깨달음을 주는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신선한 충격을 준다.)
거대한 생태계는 다양성 유지를 위해 진화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종을 분류하고 연구하고 보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겠지만, 이미 많은 종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누군가 새로운 종을 조사하고 기록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이 거대한 자연계의 시스템을 일개 구성원인 인간이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인간의 오만함이 드러나는 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어 놓은 경계선 그 너머를 추구하고 꿈꾸며 걸어 나가는 것도 인간이기에…… 경직된 질서보다 혼돈 속의 불확실성에 희망을 걸어본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서식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같은 종으로 분류되더라도 환경조건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깽깽이풀의 경우, 꽃잎의 개수가 6장이 아니라 7장인 경우는 꽤나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보통 연두/노랑색을 띠는 암술대와 수술 꽃밥이 짙은 적자색/보라색을 띠는 경우도 있고, 꽃잎의 바깥쪽 모양이 밋밋한 계란형이 아니라 마름모꼴처럼 끝이 뾰족해지며 살짝 거치가 있기도 했다. 위의 사진처럼 꽃잎의 색이 푸른색에 가까운 보라색이거나 꽃 피는 시기의 잎이 짙은 녹색인 경우도 많았다.
미세하게 다른 형태 차이를 보일 경우 해당 개체만의 변이 된 특징인지, 환경에 따른 다양성일 뿐인 것인지 판단하기 힘든데, 학명 확인을 통해 일반적인 종의 특성과 비교해 보면서 다른 유사종의 가능성이 있는지, 일반적인 특성과 동떨어진 점이 있는지 더 조사해 볼 수 있다.
아래 도식은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의 “신품종 심사를 위한 식물별 특성조사요령 (깽깽이풀)” 문서에서 발췌한 것인데, 이 문서에 따르면 깽깽이풀의 시기별로 얼마나 다양한 요소를 측정하고 수치화하여 통계적으로 데이터화하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도식화된 55번까지가 측정 요소이고, 종자의 색깔까지 더하여 총 56가지의 요소를 개화기, 결실기, 성숙한 열매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마다 측정하도록 되어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과학적인 접근은 생각도 할 수 없고, 단지 꽃과 잎의 모양과 색에 감탄할 뿐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연구하는 분들의 유용한 자료 덕분에 깽깽이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에는 깽깽이풀 종에 대한 자료조사가 소복하게 피어난 깽깽이풀 작품보다 오히려 심도 있어진 느낌이긴 한데, 알면 알수록 더 애정을 갖게 되는 보타니컬아트의 세계라고 나름 위로해 본다.
군데군데 뭉쳐서 피어나는 깽깽이풀의 느낌을 살려 여러 포기를 한 덩어리로 스케치하였다.
우측에는 아직 어린 한 포기를 따로 그려, 뿌리에서 모여 나는 형태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채색의 시작은 언제나 신나지만, 신나서 채색하다 보면 붓질이 경솔해지고 조급해지기가 쉽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더라도, 처음에는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천천히 느리게 진행하여야 후회가 없다.
연보라색의 하늘하늘한 꽃잎만큼이나 짙은 적자색의 잎도 매력 있다.
내가 그리는 시기는 꽃이 봉오리 상태에서 이제 막 피어나는 단계로, 반으로 접힌 잎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색도 짙은 녹색으로 변하기 이전이다.
몇몇 펼쳐진 잎들은 조금씩 녹색빛을 띠어가고, 앞면과 뒷면의 색감 차이와 빛의 영향에 따라 채색이 달라진다.
잎의 색을 여러 겹으로 겹쳐 올리며 밀도를 높여갈 때 하늘하늘 얇은 꽃잎과 대조를 이루며 그림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듯 만족감이 있다.
키가 자라 빛을 많이 받는 잎의 뒷면은 밝고 섬세하게 잎맥의 위치부터 스케치하듯 시작한다.
절반으로 접혀있는 잎은 앞뒷면의 색조와 명도의 차이를 명확하게 표현하여야 접힌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올해는 봄이 더욱 짧아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듯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깽깽이풀은 꽃잎들이 너무나도 약하게 붙어있어, 살짝 이는 바람에도 쉽게 떨어져 버린다.
떨어져 버린 꽃잎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난봄의 찬란했던 한 순간을 저장하는 기분으로 막 피어나는 깽깽이풀의 아름다운 모습을 종이에 담아 보았다.
내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문득 가져본다.
최지연 作
깽깽이풀
Asian twinleaf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Moore
수채화 Watercolor
300 X 30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