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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May 09. 2022

집착

나는 스스로에게 제안하는 규칙이 많다. 넷플릭스는 하루 한 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기, 인스타그램은 컴퓨터로만 사용하기, 오늘 점심은 채식으로 하기, 등등. 자잘한 약속을 오늘도 나 자신과 나누고 있다. 지켜질 때도 있지만 대개 안 지켜질 때가 많다. 지켜지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그 약속을 한다. 그리고 지켜질 때까지 또 지겨운 실랑이를 벌인다.


때론 내가 대체 왜 이런 약속을 스스로와 하며 살고 있는지 되묻고는 한다. 굳이 할 필요도 없어 보이고 있는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도 될 일인데, 심지어 그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있는데 왜 매일 같이 이런 굴레에 자신을 밀어 넣고 있는지 의문이다. 약속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무엇에 대해서 그토록 절제하며 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었다. 


약속은 대개 전자기기의 사용과 관련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전자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꽤나 중독적인 사용을 보이는 편이다. 사람들의 답장을 계속 기다리고 답장이 오는지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끊임없이 잠금 해제를 반복하는 다소 강박적인 사용 습관이 있다. 그렇기에 그런 습관을 고치고자 전자기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약속을 정하고 있다. 결과는 영 시원치 않다.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지켜진다고 해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관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헛된 약속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어쩌면 내 약속은, 절제의 방향은 도리어 내가 대상을 더욱 집착하고 무척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일지 모른다. 내가 돈에 대해 무심해지려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지고자 하는 것도 그와 반대되는 상황을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러한 나의 바람이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없음에 그로부터 최대한 멀어짐으로써 다가올 박탈감 내지 좌절감과 떨어지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은 더 강한 욕망 내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그대로, 흐르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을 테다. 실로 어려운 부분이다. 어떤 방향을 택해야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 그렇다고 나의 바람을, 아니 욕심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면 결국에 지켜지지 못할 박탈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텐데 내가 아등바등 애를 써서 바꿔 놓을 자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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