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사의 이야기가 오히려 자연과 사람을 갈라놓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숲으로 갔다. 숲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개구리가 살고 있고, 개구리 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설도 열심히 준비했다. 내가 직접 찍은 개구리 알 사진도 뽑아가고, 직접 개구리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신기한 사실들도 열심히 외웠다.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개구리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아이들과 함께 작은 웅덩이 앞에 도착한 뒤 나는 준비해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개구리가 얼마나 신기한 동물인지, 알에서 올챙이를 거쳐 개구리가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등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딱히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관심은 이미 내가 아니라 개구리 알, 그리고 마침 그 자리에 나와 있던 개구리에게 가 있었다.
나는 준비해온 이야기를 마친 뒤, "자, 그럼 개구리 알을 직접 관찰해볼까?"라고 말하며 루페를 꺼냈다. 아이들에게 루페를 건네주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들은 개구리알을 그렇게 오래 관찰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우 집중했다. 아이들은 웅덩이 근처에서 열심히 개구리를 찾아다녔고, 결국 한 마리를 찾는 데 성공했다. 아이들은 개구리에게 몰려가서 개구리를 열심히 구경했다.
나는 내가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줌으로써 개구리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그 후에 아이들이 직접 개구리를 관찰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이미 웅덩이를 보자 마자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억지로 아이들을 나에게 집중시킨 뒤 준비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내가 준비한 해설은 개구리와 아이들이 더 잘 만날 수 있게 돕는 윤활제가 아니라, 그 사이를 잠시 갈라놓는 가림막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윤활유 같은 자연해설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나에게는 크나큰 난제다.
강의실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들어왔다면, 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주의를 너무 오래 뺏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냄새 맡기, 만져보기, 자세히 보기, 가만히 멈추기, 눈 감고 소리 듣기, 눕기 등 먼저 자연 속에서 어떠한 체험을 하게 한 뒤 부가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 체험과 관련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할 때, 사람들은 해설사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윤활유 같은 자연해설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자연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대체 어떤 체험을 해보자고 제안할 것인가? 그리고 그 체험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이 질문들도 참으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