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주운 질문들> 이기적인 행동, 이타적인 결과

청설모는 누구를 위해 도토리를 땅에 묻을까?

by 청설모
img.jpg 서울 어느 숲에서 찍은 청설모다. 이 청설모는 꼬리의 털이 좀 부족해보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한다. 원숭이는 몰라도, 나는 청설모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소나무 위에 청설모 2마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신기해하며 관찰하고 있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약한 가지를 쥐었다가 그 가지가 부러지면서 함께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무의 높이가 20m는 되었기 때문에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청설모의 추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청설모는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본능적으로 몸을 쫙 펴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청설모는 바닥에 떨어진 뒤 다시 재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 숲에는 청설모가 많았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진 '새우 튀김'들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진짜 새우 튀김은 아니다. 청설모가 솔방울을 갉아먹고 버린 조각이 작은 새우 튀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숲 속의 흑기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검은 털을 가진 청설모는 우리나라의 울창한 숲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포유류다. 어렸을 적 동네 뒷산에서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청설모였다.


그런 청설모에게는 독특한 습성이 하나 있다. 바로 가을이 되면 도토리를 주워서 땅에 숨기는 것이다. 왜 그럴까? 청설모는 겨울에도 겨울잠을 자지 않고 먹이 활동을 한다. 도토리를 숨겨놨다가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 찾아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설모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자기가 숨겨놓았던 도토리를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두고 청설모의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도 평소에 많이 까먹으며 살지 않는가? 나만 해도 빨래를 널다가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던 지폐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청설모가 묻어놓고 잊어버린 도토리 중 일부는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싹을 틔운다. 그렇게 숲은 점점 영역을 넓히고, 청설모 덕분에 씨앗을 퍼뜨리는 데 성공한 참나무들은 속으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청설모는 참나무들을 위해 도토리를 땅에 묻었을까? 그렇지 않다.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숲을 살리는 이타적인 결과를 낳는다.


나는 이기적인 행동과 이타적인 행동을 명확히 구분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청설모들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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