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유내강 이런 내강?!] 제3편
chapter 1. 기상 (起牀)
옅은 암막 커튼 사이로 얇은 빛 하나가 들어옵니다.
매번 같은 시각에 맞춰놓고 잠든 알람시계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자 부단히 달래며 오늘도 하루가 시작됩니다. 찌뿌둥하고 졸린 몸을 일으킵니다. 가사 없는 노래를 연결된 스피커로 재생시키고는 비몽사몽 한 눈으로 커튼을 걷어놓습니다.
어두운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벗어놓은 슬리퍼를 찾습니다. 한 짝은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 남은 다른 한 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기 즈음 흐릿하게 뉘어져 자고 있는 한 짝을 마저 발견했습니다. 이내 발을 구태여 안 쪽에 제대로 끼우지 않고, 사뿐 얹어 밟고 섭니다.
[낙엽, 함부로 밟지 말자_윤석구 시인]의 시는 있지만,
다행히도 [실내화, 제대로 신자] 그런 시는 없더라고요.
‘당장 발이 슬리퍼 안에 제대로 안착되었는가?
대신 ‘차가운 바닥에게서 내 발을 보호해 주는가?’
아침엔 정도(正道) 아닌 최선을 따르기로 합니다.
어두운 화장실에서의 아침 준비를 경험해 보신 적 있나요?
일어나 마자 눈부신 화장실의 실내등에 놀란 적은요?
...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여유롭고 부드러운 아침을 위해 조명을 켜고 시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불을 켜고 시작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요.
어두운 공간, 잠에서 깬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조명 스위치를 ‘툭’
하고 눌러 환히 비추는 과격한 아침의 시작은, 그 번쩍이며 편치 않은 아침은.
저와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에 편안히, 조금 더 부드럽고 우아하게 시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혹시 내가 사용하는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거나, 정해놓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가요?
...
꾸준히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둔다는 것은 자유분방한 행동 패턴을 가진 경우
꽤 불편하거나, 불필요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환경에서는 오히려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불을 꺼둔 지금의 아침 샤워실 경우에서 말이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놓던 위치에 정확히 있는 당장 필요한 것(예, 칫솔과 치약, 수건 등)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 속에 앞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손을 뻗어 꽤나 잘 찾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눈을 감고 거울을 보지 않고도 양치질을 시작합니다.
동시에 지난 꿈을 돌아보거나, 출근 소요시간을 헤아려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서서 졸면서 바삐 움직이며 준비를 이어갑니다. 윗니와 아랫니를 솔질합니다. 천천히 온 구석구석과 안녕한 뒤에 어지러웠던 꿈의 잔상 또한 헹구는 물과 함께 쓸어 내려보냅니다. '물 뱉는 소리'. 입안이 시원해집니다.
chapter 2. 목격 (目擊)
씻고 나면 수건은 가지고 나와 툭툭 남은 물기를 걷어내고는 넓게 펼쳐줍니다. 전자레인지 선반, 생뚱맞게 올려놓은 작은 거울 앞에 서서 로션을 바릅니다.
들어가기 전, 일어나 마자 켜둔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잔잔한 선율에 여명(黎明)의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립니다. 바깥의 기온에 외투를 입고 나갈지 고민하려 돌린 시선은 이내 멈추고 맙니다.
멀리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저 창밖의 세상은 낯설고 조용하게 느껴지지만, 아름답습니다.
텅 빈 길 가에 종종 차가 '쒸익 쒸익' 다니고,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사람들은 침대 위의 울음을 반복하는 시계를 달래느라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못할 텐데. 저렇게 조용히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 순간을 목도하는 시간.
출근이 아니라면 순간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습니다. 하물며 이불 속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옷을 집어 들고는, 불어오는 바람이 집안 곳곳을 보러 온 손님처럼 편히 둘러볼 수 있도록 창문을 조금 열고 가방을 챙겨 나옵니다.
chapter 3.
지금 이 순간은
새해가 돋는 정동진까지
애써 찾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지금 이곳은
좁은 방에 불과하지만
로션을 바르다 멈춰 선다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훌륭한 명소가 됩니다.
지난밤 같이 피곤에 잠든 휴대폰을 깨우고
뒤적이며 시작하지 않아도,
더 생생하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필 중요한 날
가끔씩 시계가 울리지 않아
원망하며 하루의 시작이 있을 수 있더라도,
동이 트는 하늘은 조용히 위로하고 있을 겁니다.
이토록 익숙한 순간을 생경히 관찰하고,
가능한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면서
푸르스름한 고요와 응원 속에 하루를 시작하길 바랍니다.
각자의 아침 맞이를 생생하게 떠올려보세요.
각자의 창문 앞에서 다시금 돌아보고, 바라보세요.
불은 끄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연히 창 밖을 바라본 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에
필연을 다해 공감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다가올 이야기.
[외유내강 이런 내강?!] 제4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