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래도 나는 다시 하루를 산다

무력한 마음을 안고도 포기하지 않았던 하루

by 이숨

10개월 계약이 끝나면 다시 재계약이 될 거라 믿으며, 나는 비교적 마음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 가끔은 고용 사이트에 들어가 다른 일자리를 살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이곳에서 조금 더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일이 더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자연스럽게 품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바라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회사에 일이 줄어들었고, 그 이유로 계약은 연장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 역시 같은 소식을 들었고, 얼굴에는 비슷한 허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과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는 재계약이 안 될까요?” 돌아온 대답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 더는 계약을 이어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다른 곳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허탈감과 무력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기대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겨우 숨을 고르며 남은 일을 마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날따라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아이들 밥부터 차렸다. 아이들이 잠시 각자의 놀이에 집중한 틈을 타, 조용히 고용 사이트를 켰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이 우선이기에 근무 시간대를 먼저 살폈고, 그 시간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다시 한 번 눈여겨보았다. 마음은 이미 조급했지만, 선택은 늘 신중해야 했다.한참을 그렇게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막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내가 돈 줄게. 그러니까 엄마 일 안 하고, 나 늦게 유치원 가면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아이도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아버린 순간, 미안함이 먼저 밀려왔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갈 일이고, 지금의 나는 당장 수입이 필요했다. 그래야 나와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긴 숨을 한 번 내쉰 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조금만 더 벌면, 우리 막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막내는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투정을 부려본 거라며 그저 안아달라고만 했다. 막내를 꼭 끌어안은 채,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조금만 참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거야. 걱정으로 가득 찬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일을 하는 내내 마음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더 나은 길은 없을까.’ 그러면서도 마치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를 다독였다. 분명 더 좋은 일자리는 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포기하지 않았고, 오늘 하루를 견뎌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살아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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