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물, 작은 설렘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삶 속에서 나를 꾸미는 일은 어느새 가장 먼저 내려놓은 선택이 되었다. 오늘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쁜 날들이 이어지고, 내 건강 하나 챙기는 일조차 버거운 현실 앞에 서 있다. 거울 앞에 서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내가 그대로 비친다. 꾸미지 못한 모습이 아니라, 버티느라 지친 얼굴이다.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도 잘 해냈어. 지금의 너도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야.” 그렇게 나는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무리하며 거울 속의 나를, 그리고 나 자신을 조금씩 다독이며 살아왔다.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날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내가 아는 지인분이 머리 모델을 구한다는데…”
짧은 메시지와 함께 연락처 하나가 덧붙여져 있었다. 연락해보라는 말은 가볍게 적혀 있었지만, 그 문장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한 게 언제였을까. 자르기만 급하게 반복했을 뿐, 미용실 의자에 오래 앉아 누군가에게 온전히 맡겨본 기억은 까마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머리를 가꾼다는 일은 나에게 더 이상 일상이 아니라, 어느새 사치처럼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빚이 없던 시절에는 한두 번쯤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기도 했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마저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를 버텨내는 데 모든 힘을 쏟고 나면, 나를 위한 선택은 늘 뒤로 밀려났다. 그래서 그 연락은 더더욱 뜻밖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힘든 삶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아직은 살만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이유도 이런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팍팍한 시간 한가운데에서도 아무 예고 없이 작은 선물들이 도착하곤 하니까. 동생이 보내준 연락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잠깐 고마움에 잠긴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다. 그 짧은 행동 하나가, 이후의 하루를 조금 다르게 흘러가게 만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헤어디자이너와 몇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은 끝에, 약속은 주말 저녁 일곱 시 반으로 정해졌다. 해가 지고 나서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나를 위한 기분 전환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약속을 기다리던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쉼 없이 내렸다. 빗길을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먼저 피곤해졌고, 막내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잠깐 망설임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이 약속을 쉽게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동생이 건네준 마음이었고, 어렵게 이어진 기회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한 번도 풀어보지 못했던 머리카락에 작은 변화가 생길 거라는 생각이, 마음 한쪽을 은근히 설레게 했다. 귀찮음과 기대가 반반쯤 섞인 채로 차에 올랐고, 빗소리가 가득한 저녁길을 막내와 함께 달렸다. 생각보다 그 시간은 조용하고,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건, 거울 속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에 대한 작은 기대감이 마음 한켠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도착한 미용실은 하루의 끝자락처럼 조용했고, 마치는 시간에 진행되는 예약이라 다소 늦어질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어 헤어디자이너는 아직 인턴이라며, 디자이너가 되기 전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커트 사진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히려 나에게 시간을 내어줘서 고맙다며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웃으며,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라고 답했다. 머리를 손질한 지 오래되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며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그 말마저도 그날의 분위기 속에서는 부담보다는 솔직한 인사처럼 느껴졌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나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정돈되지 않은 채로 오래 묶여 있던 내 머리카락이, 이제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지 자연스러운 기대가 마음을 채웠다. 가운을 두르고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인턴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흘렀다. 아직 스무 살 초반이라는 말에 괜히 마음이 한 번 더 머물렀다. 이어 들려온 가족 이야기는 생각보다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일찍 결혼한 어머니를 보며 자라온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힘들었던 기억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느새 머리보다 사람에게 먼저 집중하고 있었다.성인이 되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졌고, 그래서 예전보다 더 자주 고마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꺼냈다. 힘들 때도 많지만, 자신의 일을 늘 믿고 지지해주는 엄마가 있어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선택한 일이기에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즐겁게 해나가고 있다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좋은 엄마를 곁에 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의 삶을 조건 없이 응원해주는 엄마이고 싶다는 바람이 떠올랐다. 동시에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과연 괜찮은 엄마일까,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돌아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조금씩 고쳐나가면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선생님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를 손질받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 인턴이라는 이유로 혹시라도 부족한 점이 보일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오히려 성실하게 다가와서, 나는 괜찮다며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손끝이 섬세하고 솜씨도 좋다며 몇 번이고 칭찬을 건넸다. 사실 나에게는 큰 변화보다, 변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마음껏 해도 된다며, 인턴 선생님의 선택에 내 머리카락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그리고 어떤 변화에게 나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결국 나에게도 더 깊은 배려로 돌아온다는 것을, 그날은 유난히 또렷하게 느꼈다. 그래서 나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공간을 채웠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막내도 놀라울 만큼 잘 버텨주었다. 그렇게 네 시간이 지나 완성된 머리는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특별히 화려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충분한 변화였다. 집에 돌아오니 큰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막내 역시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조용해진 집 안에서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나의 하루 중 기분 좋은 변화 덕분에, 그 하루는 살만했고, 작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