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작품이다.
가장 먼저 표현력과 문장이 아름답다.
둘째로 인간의 본성을 독자에게 순수하고 명확하게 전달했다. 우리가 추상적인 감정들을 많은 말로 그리고 글로 표현하지만, 섹스피어만큼 글이란 수단으로 감정을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느끼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가 표현한 인간의 본성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즉 우리도 쉽게 마녀의 농간에 넘어가 매우 어리석은(비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맥베스가 그렇게 잘못 했을까? 전쟁영웅이고 의리와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장군이었다. 다만 심술궂은 세 마녀의 꼬임에 넘어가서 야망을 가지게 된 것 뿐이다. 우리는 모두 야망이 있다. 권력과 사랑과 돈을 원한다. 순간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야망의 앞잡이가 되기까지 맥베스는 고민한다. 결정을 되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피를 선택했다.
맥베스 같은 용맹한 장군도 야망 앞에 모래바람처럼 무너진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 마녀들은 이 부분을 잡고 물어뜯는다. 그들이 맥베스에게 온 이유는 “심술궂은 옹고집” 이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냥 심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심지어 이들은 맥베스가 뱅쿠오의 자손이 언제 왕이 되는지 말하지 않는다. 결국 맥베스 사후에 덩컨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한다. 언제 왕위를 뱅쿠오의 자손에게 빼앗길까 공포에 떨며 본인의 본성까지 다 잃었고 마음의 고문대에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맥베스는 뱅쿠오의 자손에 의해 죽지 않았다. 만약에 마녀들이 미리 얘기해주었다면 그가 고통의 불덩이에서 춤을 추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마녀들은 교활하고 잔인하게도 침묵했다.
내 생각에 세 마녀는 언제나 우리들 곁에 있는 것 같다. 맥베스에서는 야망이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결핍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사랑, 돈, 존경이나 권력의 결핍은 존재를 숨긴다. 평소에는 이런 결핍이 내 안에 있는 줄 상상도 못하게 숨 죽인다.
그리고 어떤 날, 아주 작은 계기로 결핍이 꿈틀하면 세 마녀가 파멸로 유혹한다.
추락은 고통스러울 것이고 결과는 추저분할 것이다. 더욱이 빠른 속도로 파멸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는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나약한 인간이 마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생각에는 내 안에 어떤 결핍이 있는지 잘 찾아야 한다. 지금 현재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꼭꼭 숨은 결핍은 시간이 지날수록 덩치를 키운다. 그래서 괜찮은 지금, 내 안에 있는 숨은 결핍을 찾아야한다.
결핍을 찾았다면 노력을 해서 채울 수도 있고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점은 결핍은 잘못이 없다. 혼내지말고, 탓하지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야한다.
그래야 결핍이 세 마녀에게로 도망가지 않는다.